[특파원칼럼/조은아]유럽의 ‘탈중국’에 기회가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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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업들, “중국 대신 한국”
무역 의존도 높은 한국에 다변화 기회

조은아 파리 특파원
조은아 파리 특파원
최근 독일의 한 투자공사 사장이 현지 공관에 “한국과 독일 고교생이 교류할 기회를 만들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대학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일찍이 고교에서부터 해보잔 얘기다. 수능에 목숨 거는 한국 고교 현실을 생각하면 현실화되긴 어려워 보인다. 자녀들이 학원 갈 시간에 독일에 가도록 놔둘 학부모는 아마도 많지 않을 것이다. 현실화 가능성을 떠나 대학이 아닌 고교생 교환 프로그램 제안이 나와 흥미롭다. K팝 등 한류 영향도 있겠지만 독일에선 ‘한국과 경제 협력을 늘려야 하는데 한국을 잘 모른다’ ‘중국 전문가는 많은데 한국 전문가는 부족하다’며 일찍이 한국을 배우려는 이들이 생겨난다고 한다.

기업들 교류가 늘며 ‘한국을 배우자’는 움직임이 탄력을 받고 있다. 실제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의 강국들은 주로 신재생에너지, 전기차 등 미래 산업 분야에서 한국과 협업을 늘리고 있다.

한국도 유럽 투자에 적극적이다. 동유럽 폴란드에 투자를 가장 많이 하는 국가가 한국이다. 폴란드아시아상공인회에 따르면 지난해 폴란드에 대한 외국 투자금이 35억 유로(약 4조7000억 원)였는데,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9억 유로가 한국에서 왔다. 2위인 미국 투자액(3억5300만 유로)의 무려 5배가 넘는 규모다. 이에 폴란드에선 ‘한국 덕에 1900여 개의 일자리가 생겨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분위기 속에 유럽 국가들의 ‘탈(脫)중국’ 움직임을 주목하게 된다. 중국 유럽상회 보고서에 따르면 탈중국 의사를 밝힌 유럽 기업 비율이 올해 2월 11%에서 4월 23%로 뛰었다.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 봉쇄 조치를 단행하자 기업들 발이 묶여 손해가 막심해졌기 때문이다. 중국에 머물던 유럽 기업 직원들도 “못 견디겠다”며 이직하려 해 기업들 고민이 커졌다고 한다.

독일에선 러시아가 탈중국을 부추긴 셈이 됐다. 독일이 가스 공급을 의존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의 제재에 맞서 독일로 흐르는 가스관을 잠가 에너지난을 촉발시켰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독일 제조기업의 원료 공급망을 틀어쥐며 경제를 뒤흔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불거지고 있다. ‘중국 의존도도 줄여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영국에서도 다음 달 최종 승부를 가릴 총리 후보들이 대중국 강경 노선을 예고하고 있다. 기술과 자원 수입을 중국에 의존해 경제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은 중국 대신 한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은 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첨단 산업 우위가 있고, 중국보다 정치적 리스크가 작기 때문이다. K팝, K드라마 등 더욱 거세진 한류도 기업들의 호감을 사고 있다.

유럽의 탈중국은 한국에도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는 좋은 기회다. 중국을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둔 한국으로선 유럽보다 더 절박하게 탈중국을 모색해야 한다. 유럽은 반도체, 2차전지 등 첨단 산업 수입 다변화를 위해 중국 대신 한국을 찾는데, 정작 한국의 첨단 제품 원료는 상당 부분 중국에서 들여온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전기차 배터리 원료인 리튬, 니켈, 망간, 코발트 등 정밀화학원료 수입액은 1년 전보다 89.3%나 뛰었다.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같은 경제 공격이 언제 불거질지 모르는 일이다.

유럽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코로나19 등으로 무역 판도가 재편되고 있다고 말한다. 무역을 경제의 마지막 보루로 여기는 한국이야말로 민첩하게 다변화를 꾀해야 할 때다.

조은아 파리 특파원 achim@donga.com
#유럽#탈중국#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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