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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고물가 타고 돌아온 ‘통큰 치킨’의 추억 [광화문에서/박선희]

입력 2022-08-08 03:00업데이트 2022-08-0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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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산업2부 차장
최근 유통업계의 최저가 경쟁을 보다 보면 마치 10여 년 전으로 되돌아온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두 달 연속 6%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기록할 정도로 물가가 치솟자 할인 경쟁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급기야 ‘최저가격보상제’까지 돌아왔다. 소비심리가 위축되는 고물가 시대일수록 가격 경쟁력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핵심 요소로 부상하기 때문이다.

일명 반값 시리즈도 이런 초저가 경쟁 기조를 타고 되돌아왔다. 대형마트들은 최근 한 마리에 1만 원 미만의 치킨을 선보이고 나섰다. 반값 치킨의 원조는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 롯데마트가 ‘통큰 치킨’을 처음 선보였다. 당시 한 마리 1만2000원 하던 프랜차이즈 치킨의 반값에도 못 미치는 5000원에 30% 많은 중량을 선보였다. 소비자들은 개점과 동시에 길게 줄을 섰지만, 역풍이 만만치 않았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계를 중심으로 ‘영세 골목상권 말살’ ‘대기업 횡포’란 반발이 나왔고 정치권까지 “선을 넘었다”며 가세했다.

요즘 상황은 그때와는 사뭇 다르다. 대형마트 3사 치킨 중 최저가인 홈플러스 ‘당당치킨’은 한 마리에 6900원이다. 6월 말부터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만 26만 마리. 당초 계획했던 1∼2개월 치 목표 판매량을 일주일 만에 달성했다. 3만 원에 육박하는 요즘 치킨값을 감안하면 ‘통큰 치킨’보다 더한 가격 파괴지만 당시와 같은 십자포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같은 반값 치킨인데 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가. 일차적으론 고물가 위협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치솟는 프랜차이즈 치킨값에 대한 소비자 반감도 커졌다. 무엇보다 ‘통큰 치킨 사태’는 소비자 선택권과 영세상권 보호란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치킨게임이었다. 당시 정부는 제일 쉬운 방법으로 상황을 종료시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판매 직후부터 불공정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나섰고, 청와대가 나서서 ‘밑지고 파는 미끼 상품’이라 비난했다. 부담을 느낀 업체 측이 일주일 만에 백기를 들었다.

새 정부 출범 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폐지가 시험대에 올랐다. 전통시장 보호를 위해 2012년 도입됐지만 계속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던 규제다. 사회적 여건도 반값 치킨에 대한 반응만큼이나 변했다. 소비자 선택권 요구는 높아진 반면, 이커머스 성장으로 대형마트의 시장 지배력은 예전만 못하다.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면, 이 문제가 여전히 부담스러운 치킨게임이란 것이다. 대통령실은 국민제안 투표 1위로 선정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폐지를 어뷰징(중복투표)이 의심된다는 석연찮은 이유로 국정과제 반영에서 취소했다. ‘신발 속 돌멩이’ 빼겠다는 일성은 어디 가고 가뜩이나 낮은 지지율에 소상공인 집단 반발까지 더할까 부담감이 역력한 행보다. 10년 전 ‘통큰 치킨’ 조기 퇴장의 추억이 어른거리는 건 단지 기분 탓일까. 그때처럼 가장 쉬운 답을 택해 줄행랑치는 일만은 없길 바란다.


박선희 산업2부 차장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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