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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펠로시 방한, ‘정치’보다 ‘외교’[알파고 시나씨 한국 블로그]

알파고 시나씨 튀르키예 출신·아시아엔 편집장
입력 2022-08-05 03:00업데이트 2022-08-05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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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알파고 시나씨 튀르키예 출신·아시아엔 편집장
며칠 전에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면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은 잠시 수그러들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자칫 잘못하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보다 더 큰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모두가 이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미국이 동유럽에서 러시아에 밀린 상황이고, 중동에서도 이란에 견제당하고 있다. 이렇듯 미국은 각 지역 패권국들에 고전하고 있는 상황인데, 동아시아에서도 중국에 밀리면 절대적인 패권국 이미지가 크게 흔들릴 거라는 계산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일단 중국을 제대로 찌른 다음 아시아 동맹 라인을 든든하게 만드는 차원에서 펠로시가 동맹국들을 방문하는 게 아닌가 싶다.

‘대한중동놈’이란 장난스러운 이름으로 유튜브에서 기자로 활동하는 필자는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중동에서는 어떻게 보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하여 유력 신문사들의 1면을 하나씩 죽 찾아봤다. 한데 참으로 신기한 현상을 보게 되었다.

일단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보도하지 않은 곳은 없었다. 다 어느 정도 길게 보도했다. 그러나 1면은 좀 달랐다. 웬만한 아랍어 신문사의 1면에는 테러 조직 알카에다의 수장인 아이만 알자와히리의 암살 작전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아시다시피 알자와히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드론 공습으로 사망했다.

이란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이란의 진보 진영 언론 에브테카르, 아랍의 앗샤르끄 알아우사트 등 소수 언론사를 제외하고는 악화일로로 치닫는 미중 관계를 1면에 보도한 곳은 없었다. 대중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이 아니니 그럴 만도 하다.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려 하루하루가 바삐 돌아가는 상황에서, 저 멀리 태평양 지역에서 일어나는 미중 충돌에는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튀르키예(터키) 언론은 좀 다르다. 튀르키예에서는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1면에 다루지 않은 신문사가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지역 패권국이다 보니 세계 정세에 비교적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이리라.

중동 언론을 보고 난 뒤 한국 언론을 다시 보고선 깜짝 놀랐다. 펠로시의 대만 방문 내용보다는 방한이 예정된 펠로시와 윤석열 대통령이 만날 것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이념 싸움을 벌이고 있다. 태평양에서 중국과 미국이 대만 문제를 놓고 충돌하면 가장 큰 피해를 볼 지역 국가는 대만, 그 다음으론 한국이 될 것이다. 우리는 군사적으로 미국의 친구이고, 경제적으로 중국의 친구이자 이웃 국가이다. 정치적 잣대로 바라볼 문제가 아니라, 냉정하게 외교적인 분석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 펠로시의 이번 방문 자체가 큰 의문점을 던지고 있다. 미국이 정부 차원에서 이번 방문을 기획한 것인지, 아니면 여당이긴 하지만 펠로시라는 한 개인 혹은 미국 내 극진보 라인이 이 순방을 기획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듯, 펠로시 의장의 순방 때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적절할지가 큰 문제로 보인다. 결국 윤 대통령은 방한 중인 펠로시 의장과 만나지 않고 전화 통화만 하는 선택을 했다.

한국-미국의 동맹 관계가 그 어떤 무역 관계와 협상할 수 있는 카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미국을 따라 가는 것도 합리적인 사고가 아니다. 이웃 국가이자 세계 패권국가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을 자극하는 것도 비합리적이다. 중국의 위협과 러시아의 위협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여유를 만들려고 대통령이 휴가를 떠났다는 것이 아주 전략적인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외교적 운명과 관련된 사안이 터질 때는 냉정한 시각으로 상황을 분석하는 게 우선이다. 한데 한국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평소 정치적 입장에 치중해 중요한 부분을 잊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위험한 자세를 버리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외교 역량을 키워 나가는 모습을 기다린다.

알파고 시나씨 튀르키예 출신·아시아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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