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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이기홍 칼럼]“제가 없어져도 좋아” 울먹이던 7개월 전으로 돌아가라

입력 2022-08-05 03:00업데이트 2022-08-05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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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관저 공사 수주에 김건희 관여했다면
도저히 용납 못할 公私구분 능력 실종의 징표
무관하다 해도 논란 예상못한 대통령실 무능 극치
“아내 역할 충실하겠다”던 절박했던 시기 잊었나
이기홍 대기자
‘국민 과반 “尹보다 文이 낫다”’. 그제 저녁 한 인터넷 신문의 제목이다.

여론조사업체 리서치뷰의 1000명 대상 조사(7월 30, 31일)에서 ‘윤석열 정부가 더 잘하고 있다’가 33%, ‘문재인 정부가 더 잘했다’가 57%로 나왔다는 내용이다.

전(前) 정권 비교를 방패로 내세웠던 윤 대통령으로선 지지율 추락 자체 보다 더 자존심 상할 결과다. 만약 훗날 역사의 평가에서 ‘민주화 이후 최악의 정책 실패, 최악의 이중적·위선적 행태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 문 정권보다도 하위로 랭크된다면 이는 윤 대통령 본인의 불명예를 넘어, 대한민국의 정상화와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을 갈망하는 과반수 국민의 불행을 의미한다.

물론 이는 기우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지지율이 달포 만에 52%에서 30% 안팎으로 폭락했지만 원인과 해법은 다 나와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대통령이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도층과 온건 보수층의 지지철회는 이념·정책 방향이 아니라 윤 대통령 개인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반대(oppose)라기보다는 한심하다, 못마땅하다(dislike)에 가까운 것이다.

만약 문 전 대통령에게 완전한 변신을 요구하면 소주성 친중정책 대북유화책 탈원전 등을 포기하라는 것인데, 이는 이념·국정방향은 물론 핵심 지지층 포기를 의미하므로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대변신은 자신의 마음가짐과 언행만 바꾸면 되는 것이고 지지층이 박수를 칠 일이다.

변화의 핵심은 겸손하고 진지한 이미지로의 변신이다. 이는 진심으로 국민을 섬기는 마음, 국민이 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낮은 자세를 가져야 가능해진다.

소통방식도 바꿔야 한다. 도어스테핑은 대통령이 먼저 그날 자신의 어젠다를 진지하고 절실한 자세로 얘기하고 난 뒤 질문을 받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질문에 대한 답변에 급급하다 보니 야당과 언론에서 제기한 이슈들에 질질 끌려가고 대통령의 어젠다가 실종돼 왔다.

겸손하고 진지한 지도자상(像)으로의 재정립은 외형적 변화만 아니라 밑바탕에 절박함과 넓고 큰 마음이 깔려야 가능해진다.

윤 대통령이 가장 절박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봤을 때는 올 초였을 것이다.

1월 1일 윤 후보는 “자신을 변화시키는 인간만이 세상의 위대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저부터 바꾸겠습니다”며 갑자기 신발을 벗더니 카메라를 향해 큰절을 했다.

그날 아침 신문들은 39.9% 대 30.2%(동아일보-리서치앤리서치) 등 큰 차이로 윤 후보가 뒤지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들을 전했다. 후보 교체론이 불거지던 시점이었다. 윤 후보는 닷새 뒤에는 국민의힘 의총장으로 달려가 이준석 대표를 뜨겁게 포옹했다.

그 며칠 전인 12월 26일 김건희 씨는 “제가 없어져 남편이 남편답게 평가받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고 울먹이며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약속했다.

부부 모두 대선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정말 다른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언제 그랬냐는 듯 김 여사 관련 논란이 하나 둘 불거지더니 이젠 비등점을 넘어서고 있다.

이번 코바나컨텐츠 전시회 후원 업체의 대통령관저 공사 수주 논란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건이다.

대통령실 관련 공사는 공식 발주처는 행정안전부지만 경호실이 통제한다. 현 경호실장은 윤 대통령의 고교 1년 선배다. 만약 김 여사가 경호실에 업체를 소개했다면 이는 그 어떤 논리로도 용인 받을 수 없는, 상식적 수준의 공사(公私) 구분 관념조차 망각한 행동이다.

김 여사가 전혀 무관한 일이라 해도 여사 관련성이 있는 업체가 수주할 경우 문제가 될 것임을 대통령실이 몰랐다면 무능·무책임의 극치다. 좌파 이권 네트워크의 영속성을 위협받는 수많은 좌파세력이 둑을 무너뜨릴 작은 개미구멍이라도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현실을 망각한 해이한 행태인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의 김 여사에 대한 태도에는 반이성적이고 감정적이고 성차별적이고 마녀사냥적인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각성이 바뀌는 건 아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좌파진영이 온갖 악소문을 퍼뜨리며 극렬한 공세를 퍼부었지만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들은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아내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는 약속, 자신 주변에 대해서도 엄정한 공정의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후보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실망을 시켜도 이렇게까지…”라며 허탈해하는 것이다.

이제 관저에 입주하면 좌파진영은 호화 인테리어 운운하며 악소문을 퍼뜨리고 자극적인 소재들을 찾아내려 혈안이 될 것이다. 지금처럼 대통령실의 예방적 선제 대응능력이 최저 수준이고 뭐에 짓눌린 듯 배우자 문제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태에선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인사권자가 듣기 싫은 소리에 화를 내거나, 총애하는 사람의 문제를 자꾸 내재적 관점으로 이해해주려는 태도를 보이면 내부 견제 시스템은 짓눌리고 곪는다.

최고 권력자는 쓴 소리에 귀를 열고, 내부 이견에 대해선 달갑지 않은 구석이 있어도 장점을 보며 끌어안는 큰 그릇인 동시에 공동체의 가치와 원칙을 위협하는 세력, 외부의 적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단호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불법파업·점거 사태와 내부총질 문자 사태 등을 지켜본 지지자들이 고개를 갸웃하고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7개월 전 윤 후보의 진심은 국민에게 전달됐다. 지지율은 곧 반등해 한 달도 안 돼 역전했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건 인간의 속성이다. 하지만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그런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앞으로 4년 9개월간 2022년 1월의 절박하고 겸손했던 마음을 잃지 않는 게 윤 정권 성패의 관건이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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