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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호스 보이’[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54〉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입력 2022-08-03 03:00업데이트 2022-08-03 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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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이웃집 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더니 벌렁 누워 킥킥 웃었다. 발굽에 짓밟힐지 모르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말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섯 마리 중 두목에 해당하는 사나운 암말이 머리를 낮추더니 아이를 핥았다. 자발적인 복종의 표시였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 아이가 누구인가. 말귀를 못 알아듣고 여섯 살이 되도록 대소변을 못 가리고, 틈만 나면 찢어지는 소리로 악을 썼다. 자폐증 때문이었다. 그런데 말이 그에게 복종한 것이다. 말이 부모보다 아이를 더 잘 이해하는 걸까. 그의 부모는 자폐증이 있는 동물학 교수에게 자문했다. “동물들은 이미지로 생각을 해요. 저도 그렇고 많은 자폐아들도 그렇고요. 동물들은 시각적인 사고를 해요. 그래서 자폐증이 있는 사람들은 종종 동물들과 잘 통해요.” 아이의 변화를 끌어낸 것은 말만이 아니었다. 아이는 보츠와나에서 온 부시맨 샤먼들하고 같이 있을 때도 상태가 좋아졌다. 부모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으로 말들의 고향 몽골에 가보기로 했다. 통장을 털어 비행기 표를 샀고, 다른 경비는 그 과정을 기록하겠다는 집필 제안서로 조달했다. 말과 샤먼을 믿는다는 게 황당했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동물학 교수의 충고를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말을 타고 산을 넘어 순록 부족의 샤먼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대소변을 가리기 시작했다. 건네는 말에 응답도 하고 고질적인 울화가 폭발하지도 않았다. 샤먼의 예언대로였다. 루퍼트 아이잭슨은 아들 로완의 자폐증이 호전되는 과정을 ‘호스 보이’(말 소년)라는 논픽션으로 펴냈다. 자신의 것이 아니면 타인의 상처와 고통마저도 소비하려 드는 세상이지만, 자폐아를 자식으로 둔 부모의 절망과 몸부림과 지극한 사랑은 소비되기를 거부한다. 독자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것이 자기 일이 될 때까지는 관심을 두지 않는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돌아본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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