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어떻게 벌 것인가[2030세상/김지영]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입력 2022-08-02 03:00업데이트 2022-08-02 03:58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확실히 돈이 잘 안 모이네요.” 미팅차 만난 스타트업 대표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조심스럽기는 투자자 쪽도 마찬가지여서 같이 한숨으로 응수할 수밖에 없었다.

경기가 심상치 않다. 실리콘밸리의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는 얼마 전 스타트업들에 비용을 줄이고 ‘런웨이’(생존기간)를 늘리라고 경고했다. 대기업조차 해고와 고용 축소 등으로 월동을 준비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 수식이 뉴스 곳곳을 장식하는 요즈음, 기껏해야 사회생활 10년 언저리인 나와 또래들이 경험해 본 적 없는 세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근래 친구들은 모였다 하면 신세 한탄이다. 프리랜서 친구, 스타트업 친구, 대기업 친구 너나 할 것 없다. “그래서 넌 얼마 잃었어?” 시퍼런 상처만 남은 주식과 코인을 안주로 오늘도 ‘불행 올림픽’이 열렸다. 한 친구는 관련 앱을 모두 지워 버렸다고 했다. ‘아, 출근하기 싫다’ 말과는 달리, 내일의 출근을 위해 착실하게 각자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 와중에 요즘 일이 안 들어온다는 프리랜서 친구는 ‘아, 다시 출근하고 싶다’를 웃프게 외쳤다.

귀갓길, ‘밥벌이’ 세 글자를 읊조리다 뜬금없이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9년 전 배낭여행, 프랑스 파리의 한 게스트하우스. 사정없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한밤중 잠에서 깼다. “아니, 문을 왜 이렇게 늦게 열어요?” 사장님이 문을 열기 무섭게 새된 소리가 집 안 가득 울려 퍼졌다. 상의도 없이 오밤중 체크인을 하러 온 대학생 일행은 문을 늦게 열었다는 사실에 분노해 환불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는 실랑이하기도 지친 듯 지폐 몇 장씩을 손에 쥐여주고 돌려보냈다.

후에야 알았는데 그달이 마지막 영업이었다. 게스트하우스 운영의 낭만을 품고 호기롭게 파리에 정착했던 부부는 하루하루 지쳐갔다. 기껏해야 1박에 몇만 원가량의 게스트하우스 숙박비는 그들이 감당해야 하는 불합리에 비해 턱없이 저렴했다. “사람이 좋아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꼭 실향민의 표정으로 했다. 그 밤, 나는 오랜 기간 품어온 게스트하우스 운영의 로망을 버렸다.

경기 침체의 상흔 앞에서 불현듯 오래전 일을 떠올린 것은 그 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의 지친 표정이 오전 대표님의 망연한 표정, 저녁 친구들의 씁쓸한 표정과 묘하게 겹쳤기 때문이다. 전에 없이 체감하는 생존의 무게. 때맞춰 식사하듯 반복하는 출퇴근, 게임하듯 휩쓸려도 축제 같았던 상승장은 그 무게를 잊게 했다. 벌이의 방식보다는 결과 값에, ‘누가 얼마를 벌었다더라’ 하는 총액에만 관심을 쏟게 됐다.

벌이의 방식이 존재의 양식을 규정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원대한 질문을 구체화하면 결국 ‘어떻게 벌 것인가’라는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급여생활자가 자영업자가 되고, 프리랜서가 급여생활자가 되고. 많은 이들이 생존을 위해 존재 방식을 바꾸거나 위협받는 격동의 시기, 그 무게, ‘밥벌이의 진중함’을 무겁게 곱씹는다. 9년 전, 다른 방식을 찾아 떠났던 사장님은 좀 더 평안해지셨을까. 부디 그러길, 간절히 바랄 따름이다.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