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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자기중심적인 스위치 꺼두기[내가 만난 名문장/나종호]

나종호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저자
입력 2022-07-04 03:00업데이트 2022-07-04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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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호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저자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거야. 그 사람 살가죽을 입고,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 다니지 않는 이상.”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중


‘앵무새 죽이기’에서 공감에 대해 아티쿠스가 그의 어린 딸 스카웃에게 건네는 조언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문장 중 하나이다. 스카웃은 아버지의 조언을 실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지만 책의 말미에 이르러 비로소 래들리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내게 이 문장은 ‘완전한 공감은 불가능하니, 그것을 포기하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을 내가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니, 그 사람의 인생과 가치관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고 공감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라’는 자경문과 같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서른이 넘어 미국으로 건너가 정신과 의사로 일하는 나는, 나와 인종, 언어, 문화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온 환자들을 매일같이 마주한다. 나와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그들에게 나는 최선을 다해 공감하려 노력하고, 그들은 처음 보는 동양인 남자 정신과 의사인 나를 믿어주고 마음을 연다. 그렇게 겉보기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우리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악기들처럼 서로에게 공명하고 연결된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와 유사한 경험을 해야만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상대방과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경우, 본인이 겪은 감정과 기억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타인의 감정에 대한 정확한 공감이 어려울 수 있다. 공감에 있어 경험보다 중요한 것은 타인을 이해하고 돕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자기중심적인 스위치를 잠시 꺼두는 일이다. 환자들과의 공감과 연결의 경험이 나에게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이다.

나종호 예일대 정신의학과 교수·‘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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