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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정권 따라 출렁대는 4대강의 운명 [오늘과 내일/박중현]

입력 2022-06-23 03:00업데이트 2022-06-23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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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되풀이된 ‘4대강 사업’ 논란
진영논리 넘어 과학에 판단 맡겨야
박중현 논설위원
류우익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에게서 ‘한반도 대운하 구상’에 대해 처음 들은 건 2006년 하반기 어느 날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대운하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집권 후 첫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가 설명한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의 첫인상은 ‘황당하다’는 거였다. 한강과 낙동강을 잇기 위해 조령산맥에 터널을 뚫고, 갑문과 리프트를 이용해 배가 산을 넘도록 한다는 부분이 특히 그랬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해도 막대한 건설 비용만큼의 경제성을 확보하긴 어려워 보였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도 “부산에서 인천까지 배로 화물을 실어 나르는 게 훨씬 효과적”이란 의견을 냈다.

청계천의 성공을 발판으로 대권을 잡은 이 대통령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집권 초 대운하에 드라이브를 걸었다가 광우병 촛불시위로 지지율이 뚝 떨어진 뒤에야 포기하고 수자원 활용 중심의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전환했다. 2009년 말 착공된 4대강 사업은 2년 만에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바닥을 준설하고, 16개 보(洑)를 만들면서 임기 중 마무리됐다.

정권교체 같은 정권연장을 통해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곱게 보지 않았다. 단기간에 밀어붙인 부작용도 실제로 있었다. 건설업체 사장 출신 이 대통령의 ‘가격 후려치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동원됐던 건설업체들은 손해를 줄이려고 담합을 했다가 막대한 과징금을 물었다. 환경단체들은 보 때문에 강물이 ‘녹조 라테’가 됐다고 비판했다. 좋아한 건 ‘22조 원짜리 자전거길’을 이용하는 라이더들 정도였다. 박 정부에서 4대강은 금기어가 됐다.

박 정부 임기 3년 차인 2015년 하반기 43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닥치자 극적 반전이 시작됐다. 4대강 보에 모인 물이 필요해진 것이다. 국토교통부 공식 문건에 ‘4대강 활용 방안’이란 표현이 다시 등장했다. 야당 소속 지자체장도 4대강 물을 끌어 쓰자고 했다. 국토부 공무원, 관련 공기업 관계자들 사이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 부르는 홍길동 신세에서 이제야 벗어났다”는 말이 나왔다. 그렇게 4대 강은 복권(復權)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 탄핵 후폭풍이 4대강에 밀려왔다. ‘4대강 재(再)자연화’를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보름도 안 돼 규모가 큰 6개 보의 상시 개방, 4대강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지시했다. 4대강 사업은 청산해야 할 적폐로 낙인찍혔다. 보를 개방해 강줄기가 약해지고 강바닥이 허옇게 드러났지만 환경론자들은 모래톱에 온 왜가리, 백로 사진을 찍어 올리며 “자연이 돌아왔다”고 환호했다.

지난주 환경부 금강홍수통제소는 4년간 물을 흘려보내던 공주보의 수문을 닫아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가뭄도 가뭄이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4대강 사업을 잘 지키겠다”고 약속했고, 6·1지방선거에서 여당 출신 세종시장이 당선됐기 때문이다. 지금 감사원은 4대강 사업이 아니라 ‘문 정부의 4대강 보 해체 결정’의 타당성을 감사하고 있다.

4대강 보가 완공된 게 11년 전이다. 그 사이 기후변화가 빠르게 진전돼 올해 전 세계는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미중 신냉전 속에서 반도체를 안보의 방패로 삼은 대만은 작년에 물 부족이 심해지자 농민이 쓸 물까지 반도체 업체에 제공했다. 이렇게 강산과 세계가 급변하고 있지만 4대강을 둘러싼 논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끝없는 돌림노래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이젠 이념, 진영이 아닌 과학에 판단을 맡겨 4대강의 오염을 줄이면서 모은 물을 가장 효과적으로 쓸 방법을 고민할 때도 되지 않았나.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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