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성스러운 길[임용한의 전쟁사]〈217〉

임용한 역사학자
입력 2022-06-21 03:00업데이트 2022-06-21 04:30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필리프 페탱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가 패전하자 나치에 부역한 비시 정권의 수반을 지냈다. 만년이 정말 좋지 않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때는 프랑스를 구한 최고의 전쟁영웅이었다.

베르됭 전투가 위기에 빠졌을 때, 페탱이 구원자로 투입됐다. 그는 1차대전을 지옥으로 만든 맹목적인 돌격전술을 혐오했다. 그가 찾아낸 대안은 포병을 이용한 화력전이었다. 전투 초기에 독일군은 독일군답게 정밀한 포격 계획을 세워 프랑스군 진영을 초토화했다. 페탱은 우왕좌왕하던 포병을 다잡고, 화력을 증원하고, 체계적인 집중 포격으로 독일군에 악몽을 되돌려 주었다.

화력전으로 전환되자 포탄 조달이 관건이 되었다. 페탱은 프랑스 전역을 뒤져 트럭과 가용한 운송수단을 다 끌어모아 3500대의 차량을 마련했다. 그런데 도로가 없었다. 베르됭으로 오는 철도와 도로는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독일군의 포격으로 다 절단되었다. 단 하나의 도로만 남아 있었다. 도로는 폭이 6.5m로 트럭 두 대가 간신히 비켜갈 수 있었다. 너비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도로의 내구성이었다. 부드러운 프랑스의 대지 위에 설치된 비포장도로는 엄청난 물량의 수송을 감당할 만큼 튼튼하지 않았다.

페탱은 유능한 공병감을 시켜 철저한 도로 관리 계획을 세웠다. 도로에는 트럭과 공병들이 빽빽하게 늘어섰다. 트럭들이 기차처럼 길게 줄을 지어 이동하는 동안 길가의 공병들은 삽으로 겨울에는 모래를, 비가 오면 자갈을 도로에 부었다. 이 도로는 성스러운 길(부아사크레)이라고 불렸는데, 원래의 뜻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린 골고다 언덕으로 가는 길이란 의미였다. 바꿔 말하면 죽음의 길이란 의미인데, 그 죽음들 덕분에 거의 패배했던 베르됭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으니 성스러운 길이 틀린 말도 아니다.

전쟁에서 도로는 말 그대로 생명선이다. 도로를 통해 누가 얼마나 빨리 대량으로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느냐가 승패를 좌우하지만 이들의 공로는 곧잘 잊혀진다.

임용한 역사학자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