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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선 넘은 사랑[이은화의 미술시간]〈219〉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22-06-16 03:00업데이트 2022-06-16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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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스트 로댕 ‘입맞춤’, 1882년.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이나 규범, 한계를 넘을 때 ‘선을 넘는다’고 말한다. 오귀스트 로댕의 걸작 ‘입맞춤’은 연인 간의 사랑을 묘사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으로 손꼽히지만, 실은 선 넘은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포옹하며 입 맞추는 이 관능적인 연인상은 원래 로댕이 수년간 공들여 제작한 청동조각 ‘지옥문’의 일부였다. 계획이 좌절되긴 했지만, 1880년 프랑스 정부가 파리에 새로 건립될 미술관에 설치하기 위해 의뢰한 것이었다. 로댕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조각의 모델은 그 책에 나오는 연인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파올로 말라테스카다. 그들이 지옥으로 간 이유는 선을 넘는 사랑을 했기 때문이다. 조각을 자세히 보면 남자 손에 책 한 권이 들려 있다. 두 사람은 지금 아서왕 전설에 나오는 기네비어와 랜슬롯의 이야기를 읽다가 사랑에 빠졌다. 왕비와 기사의 불륜 이야기는 이들에게 용기를 내게 했을지도 모른다. 프란체스카가 격정적으로 껴안은 남자가 하필 남편의 남동생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 첫 입맞춤을 하려는 순간, 남편에게 들켜 둘 다 죽임을 당한다. 아내가 불륜했다고 살인까지 했으니 남편 역시 선을 넘은 건 매한가지다. 이루지 못할 사랑에 대한 본능적 끌림이었을까? 이 조각상에 심취해 있을 무렵 로댕은 아들까지 낳아준 로즈 뵈레를 두고, 19세의 아름다운 카미유 클로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조각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그녀와 조각가와 모델, 동료 예술가이자 연인으로서 열정적인 시간을 보냈다.

로댕은 운이 좋았다. 아무리 바람을 피워도 신실한 아내가 평생 곁을 지켰다. 파올로와 프란체스카가 함께 지옥으로 떨어진 것과 달리, 로댕은 클로델과 헤어진 뒤에도 조각가로서 명성을 계속 쌓아갔다. 다만 클로델만이 재능을 다 꽃피우지 못한 채 정신병원에 갇혀 지옥 같은 30년 여생을 보냈다. 선을 넘은 사랑의 대가는 불공평하게도 그녀만의 몫이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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