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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국민에게 열린 공간, 獨·濠 국회의사당[임형남·노은주의 혁신을 짓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입력 2022-05-24 03:00업데이트 2022-05-24 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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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수도 캔버라의 국회의사당은 건물 대부분을 ‘캐피털 힐’ 아래로 집어넣고, 언덕 위로는 2개의 부메랑이 마주하는 듯한 형태로 설계했다. 개방성에 중점을 두고 누구나 드나들 수 있도록 의사당 입구까지 잔디밭을 조성했다. 정면에서 바라본 의사당 전경(작은 사진).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고정관념을 깨는 일은 무척 어렵다. 시간이 흐르면서 원래의 취지는 사라지고, 내용은 증발하며, 껍데기만 남은 채 완강하게 버티는 일이 많다. 예를 들면 결혼 제도가 그렇다.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평생을 같이 가는 의미에서 출발했던 취지는 사라지고, ‘결혼식’이라는 형식에 갇혀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필수로 여겨지는 여러 절차는 당사자의 문제가 아닌 가족 간의 문제가 돼버리며, 정작 결혼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경우가 많다.

교육 역시 그렇다. 일종의 극한 서바이벌 게임처럼 변형되면서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의 올바른 훈육과 정상적인 성인으로 만드는 교육의 근본적인 기능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다들 문제라고 느끼지만 고치지 못한 채 이미 만들어진 틀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 사회는 주기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이 정말 어려운 문제임은 우리나라의 관공서 건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곳들은 권위를 보여주기 위한 건물이지 ‘섬겨야 할 국민’을 향한 낮은 자세를 보여주는 건물이 아니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군림하는 태도를 취하는 건물이 대부분이다. 그곳에는 어떤 이야기도 없고, 생각도 배려도 없다.

그런 면에서 가장 대표적인 건물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다. 그 건물은 당초 설계공모를 통해 당선된 건축가의 계획안에 당시의 권력자들 여럿이 첨언을 하고 간섭을 하며 점점 원형을 벗어났다. 계획안에 있지도 않은 무거운 돔을 얹고, 갑자기 높이를 중앙청(구 조선총독부)보다 높게 올리라고 해서 비례도 이상해졌다. 마치 용의 눈에 호랑이의 이빨 그리고 코끼리의 발을 합성하여 최강의 동물을 그리는 것처럼, 권위가 느껴진다기보다는 느닷없는 국적 불명의 이상한 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국회에서 일하는 국회의원은 고함을 지르며 상대편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불통의 모습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국회의 본질은 소통이고 국민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행동은 늘 그 반대이다. 그런 의원들의 모습과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모습은 정말 잘 어울린다. 슬프게도….

19세기 말에 지은 베를린 독일 국회의사당은 그 시대에 걸맞은 고전적인 외관을 가지고 있다. 삼각형 페디먼트와 우람한 열주, 그리고 좌우 대칭의 정면 구성은 하나의 클리셰처럼 권위 있고 장중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조금 이채롭기도 하고 생경한 구조물이 삼각형 페디먼트 뒤에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투명한 유리돔이다.

원래의 의사당 건물은 1894년 파울 발로트라는 건축가의 설계로 완성됐다. 그러나 1933년 나치 과격분자의 방화로 불에 타버렸고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여기저기 부서진 폐허의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동서독 연방의 의회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1995년 크리스토 자바체프라는 작가가 천으로 이 건물을 감는 작업을 통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14일 동안 유지되었던 그 설치작업은 마치 새로운 개막을 앞둔 개봉 전의 선물 같기도 하고 새로운 세계로 이전하기 위해 포장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1999년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는 1933년 나치 방화로 불탄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했다(작은 사진). 파괴된 돔은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복원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내부에는 경사로를 만들어 의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시민들이 언제든 지켜볼 수 있도록 했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웹진 아키데일리
그리고 1999년 건물이 새롭게 단장한다.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를 맡았는데, 벽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철거하고 대대적인 개축을 했다. 이때 그는 허물어진 돔의 자리를 알루미늄과 유리로 감싸서 채광이 잘되고 환기에도 유리한 친환경적인 건물로 만들었다. 그런 의미 외에도 고전적인, 구세대적인 건물에 새로운 시대의 박동을 느낄 수 있는 첨단의 재료를 이식했다. 즉, 돔 안에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경사로를 만들어 시민들이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시민들이 친숙함을 느끼도록 지어진 국회의사당으로 손꼽히는 호주 국회의사당은 캔버라 캐피털 힐에 1988년 건축됐다. 60여 년 역사의 구 국회의사당이 낡고 가용 면적도 부족해지자 새로 건축하기로 하고 설계공모전을 개최했다. 전 세계 29개국에서 참가한 329명 가운데 이탈리아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 중인 건축가 로말도 주르골라가 발탁됐다. 그는 건물 대부분을 캐피털 힐 아래로 배치하고, 언덕 위로는 마치 2개의 부메랑이 마주하는 듯한 형태를 구성했다. 언덕의 원래 높이보다 4m 더 높은 언덕 위로는 호주에서 가장 큰 크기의 국기를 설치했다. 건물에는 4700개의 방이 있고, 부지 면적은 80에이커(약 32만3750m²)에 달한다. 면적이 넓은 만큼 조경가 피터 롤랜드와 함께 외부 공간도 적극적으로 디자인했다.

당초 새 국회의사당부터 벌리그리핀 호수, 호주 전쟁기념관까지 시야가 탁 트일 수 있도록 구 국회의사당을 철거하자는 제안도 나왔으나 보존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처음부터 이 국회의사당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대중에게 공간을 자유롭게 개방하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건물 입구까지 넓은 잔디밭을 조성하고, 누구든 자유롭게 의사당 내부를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대통령이 집무하는 공간이 광복 이후 처음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이 머무는 곳은 군림하는 장소가 아닌 국민을 위한 공간임을 염두에 두고, 그 공간을 시대를 담는 그릇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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