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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카네이션은 원래 혁명의 꽃이었다![서광원의 자연과 삶]〈54〉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입력 2022-05-12 03:00업데이트 2022-05-12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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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39년 전, 엄마를 잃어버린 탓에 미국으로 입양된 딸이 극적으로 친엄마를 만났다. 몰라보게 자란 딸은 엄마의 가슴에 빨간 카네이션 한 송이를 달아드렸다. 그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잃어버린 딸을 잊지 못해 애태우던 가슴에 말이다.

몇 년 전, 이 가슴 뭉클한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궁금했다. 우리에게 카네이션은 어버이와 스승에게 달아드리는, 주로 5월에나 보는 꽃인데, 왜 그 많은 꽃 중에서 카네이션일까? 또 미국인이 된 딸이 달아준 카네이션은 한국 정서를 알아서였을까, 아니면 미국에서도 그러는 것일까?

자료를 찾다 보니 카네이션에 뜻밖의 ‘과거’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지중해가 원산지라고 알려지는 이 꽃은 원래 여름에 피는 7월의 꽃이었다. 그런데 17∼18세기 유럽과 미국 묘목업자들이 아시아 출신의 패랭이꽃과 교배해 1년 내내 꽃을 피우는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내면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되었다.

놀라운 건 우리에게 카네이션은 효도나 보은의 상징이지만 유럽에서는 원래 투쟁과 혁명의 상징이었다는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또는 노동절)인데, 이날은 1886년 5월 1일 있었던 미국 노동자들의 파업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틀 뒤 시카고에서 경찰과 노동자가 충돌해 양쪽 모두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다. 미국 문화사 전문가인 케임브리지대 캐시어 바디 교수에 따르면 당시 “5월 축제에 사용하던 산사나무와 데이지 같은 시골 꽃 대신 대량 재배한 빨간 카네이션을 사용했다”고 한다(‘세계사를 바꾼 16가지 꽃 이야기’·현대지성).

그래서인지 1917년 러시아 혁명 때도 빨간 카네이션은 낫과 망치만큼 유명한 상징이었다. 다만 1974년 4월 25일 포르투갈에서 일어난 군사 쿠데타가 ‘카네이션 혁명’으로 불린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원래는 리스본 시내의 한 레스토랑이 개업 1주년 기념으로 카네이션을 고객들에게 주려고 했는데 40년 독재에 항거한 쿠데타로 무산되자, 여기서 일하던 셀레스트 마르틴스 캐리오라는 여직원이 군인의 총구에 이 꽃들을 꽂아주고 나눠줬던 것이다. 시내 꽃집들도 호응했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혁명의 꽃이 어떻게 효도의 꽃이 되었을까?

사실 이 효도의 꽃은 혁명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1908년 5월 10일, 애나 자비스라는 미국 여성이 일요일 예배에 참석한 어머니 500명에게 하얀 카네이션 한 송이씩을 선물한 것이 효시다. 이후 그녀는 6년 동안 미국 의회에 ‘어머니 날’을 정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호소했는데, 1914년 의회가 호응해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국경일로 정했던 것이다. 이걸 미국 플로리스트 협회가 기막히게 마케팅에 활용했고 말이다. 당시 이들이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이랬다. ‘꽃으로 말하세요.’ 이것이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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