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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생각의 차이’란 안락한 말[내가 만난 名문장/김기태]

김기태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자
입력 2022-05-09 03:00업데이트 2022-05-09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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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자
“같은 세상에 살면서 서로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은 생각의 차이 때문이다.” ―조세희, ‘칼날’ 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작 곳곳의 날카로운 문장들과 비교하면 ‘칼날’의 위 문장은 심심해 보일 수도 있다. 사람들 사이에는 생각의 차이가 존재하며, 그러므로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는 윤리를 우리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배운다. 다만 어른이 되면 ‘존중’이란, 많은 경우 ‘그냥 말을 말자’에 머물고 만다. 인터넷에서 어떤 주장을 펼친 후 스스로 ‘반박 불가’라는 말을 덧붙이는 유행이 있었다. 요즘은 아예 ‘반박 시 네 말 맞음’이라고 덧붙이는 경우가 있다. ‘어차피 말이 안 통할 텐데 너는 그냥 네가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라’라는 회피다. 그러나 이런 유행의 뒷맛이 찝찝한 이유는 나는 여전히 우리가 ‘같은 세상’에 산다고 믿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 산뜻한 개인주의를 고수하려면 넉넉한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 자원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권리와 의무를 두고 다툴 수밖에 없다. ‘생각의 차이’를 서둘러 인정하고 대화를 생략한다면 그 뒤에는 무엇이 올까. 말이 안 통하면 주먹을 쓰고 싶지 않을까. 혹은 단 1%라도 더 득표해서 상대를 제압하는 방법도 있다. 때때로 ‘절차적 정당성’이란 민주주의 사회에서 주먹에 붙이는 예쁘장한 이름 같다.

그러니 나는 생각을 충분히 하지 않거나 말을 제대로 섞지 않고서 ‘생각의 차이’라는 안락한 말로 도망치는 습관을 버리려 한다. 반박 환영. 피로와 환멸 끝에 결코 좁힐 수 없는 간극과 마주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간극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칼날’에서 신애는 난장이 아저씨에게 말한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

김기태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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