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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슬픈 야광볼[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226〉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입력 2022-01-12 03:00업데이트 2022-01-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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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어른이어도 속으로는 아이인 사람들이 있다. 유년 시절에 깊은 상처를 경험한 사람들이 종종 그러하다. 최진영 작가의 ‘내가 되는 꿈’은 그러한 아이, 그러한 어른에 관한 소설이다.

아이의 부모는 늘 싸웠다. 서로를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격렬하게 싸웠다. 아이가 울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 상황에서 아이를 구한 것은 문구점 앞에서 뽑은 야광볼이었다. “형광등 빛을 품어 두었다가 어둠 속에서 눈부신 하늘색으로 빛나는 작은 볼.” 아이는 불을 끄고 책상 밑으로 들어가 손바닥에 야광볼을 놓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눈을 바짝 붙이고 바라보는 데 집중하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야광볼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부모가 싸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싸움이 끝났어도 끝난 줄 몰랐다. 나중에 엄마가 들어와 끌어내자 아이는 그때서야 눈을 떼고 말했다. “이거 야광이다.” 그 말을 듣고 엄마는 울었다.

부모가 갈라서면서 아이는 외할머니 밑에서 커야 했다. 늘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유년의 상처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어도 그 안에는 야광볼을 바라보면서 세상사를 잊으려 했던 소녀가 그때의 모습 그대로 살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가 자기 안에 살고 있는 그 아이를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깊은 비관에 사로잡힌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이제야 스스로를 다독이기 시작한 것이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더 다행인 것은 유년 시절의 자기가 성년이 된 자기를 본다면, 왜 그렇게 비관적으로 세상을 보고 아직도 야광볼로 도피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고 책망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에 대한 위로가 스스로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 셈이다.

소설 속의 야광볼은 아픈 상처 앞에서 어딘가로 도피하려고 하는 인간 심리에 대한 슬픈 은유다. 그렇게라도 버티는 거다. 그리고 때가 되면 스스로를 위로하는 거다. 자기연민도 결국에는 치유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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