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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노둔한 곰보다는 민첩한 호랑이처럼[내가 만난 名문장/김보성]

김보성 원광대 한문번역연구소 연구교수
입력 2022-01-10 03:00업데이트 2022-01-10 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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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성 원광대 한문번역연구소 연구교수
“곰은 호랑이보다 힘이 몇 배지만 호랑이를 만나면 사로잡힌다. 호랑이는 민첩하고 곰은 노둔해서다.(후략)”

―청성잡기(靑城雜記) 중


조선 후기 학자 성대중(成大中·1732∼1809)의 말이다. 후략한 부분을 요약하자면 곰은 호랑이보다 훨씬 센 힘으로 가지를 쉬이 꺾어 휘둘러대지만 호랑이가 요리조리 피하는 바람에 기력이 다해 결국 잡아먹힌단다. 글의 말미에서 성대중은 곰의 죽음이 바로 그 힘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어떠한 일의 우위를 점하는 원동력이 ‘파워’보다는 ‘스피드’, ‘우직’보다는 ‘영민’일 수 있다는 교훈이다. 세상에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굳센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도 존재하는 법이다. 곰이 아무리 우직하게 철퇴를 날려대도 날렵한 호랑이가 맞아 죽을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임인년, 검은 호랑이의 해가 도래했다. 호랑이 전시회가 잇달아 개최되고, 한국조폐공사의 호랑이 은메달을 비롯하여 각종 호랑이 마케팅이 이목을 끈다. 사실 호랑이는 한국에서 12간지 동물 이상의 매력을 뽐냈다. 멀리는 단군신화의 범부터 가까이는 1988 서울올림픽의 호돌이와 평창 겨울올림픽의 수호랑까지. 한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마스코트로 늘 호랑이가 등장하지 않았던가.

한국인의 급한 성격을 비꼬는 대표적인 말로 ‘빨리빨리’를 꼽을 수 있다. 이 빨리빨리는 패러다임이 급변하는 시대에 하나의 생존 전략으로 급부상했다고 본다. 코로나19 창궐 이래 생겨난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는 한국의 ‘빨리빨리’가 긍정적으로 작용한 성과물로 손꼽힌다. 이 ‘빨리빨리(스피드)’에 영민함이 보태진다면 호랑이의 민첩함과 한 결로 읽힐 수 있다. 아득한 팬데믹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곰같이 힘만 앞세우는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영민한 스피드’다.

김보성 원광대 한문번역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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