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文-李의 오징어게임

김순덕 대기자 입력 2021-10-28 00:00수정 2021-10-28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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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대선 후보로 지명해준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백담사로 보냈다
이재명과의 관계보다 국민이 더 중요
문 대통령은 ‘대장동 의혹’ 특검 하라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와 인사하고 있다. 2021.10.26. / 청와대 사진기자단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만났다. 청와대는 “대장동의 ‘대’자도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이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라 해도 척 하면 삼천리다. 자칫 선거 개입 빌미가 잡힐 대화를 대명천지에 할 리 없다.

공개된 대화는 암호를 방불케 한다. “지난 대선 때 좀 모질게 했던 부분에 대해서 사과한다.” 비문(非文) 이재명의 사과에 문 대통령은 “이제 1위 후보가 되니 그 심정을 아시겠죠?”라고 답했다. 거의 뒤끝 작렬이다. “다 지나간 일이고 다 잊었다” 같은 너그러운 반응이 아니다. 그러니 친문 지지층도 흔쾌히 이재명에게 가기 힘든 것이다.

대선을 다섯 달 앞둔 이 시점이면 보통 여당 후보가 주도권을 쥐고 선거전에 나선다. 26일 세상을 떠난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7년 6·29선언을 한 것도 이 시기였다. 더구나 지금은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이 무려 52%다. 임기 말 문 대통령 지지율이 38%나 돼도 역대 대통령에 비해 높을 뿐,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75%)에게 견주면 턱도 없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이재명 대선 후보 당선도 정권교체”라고 주장한 것도 현 정권과의 차별화를 노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재명은 문재인 정부 계승을 강조했다. “대통령과 생각이 너무 일치해서 놀랄 때가 있다”고도 힘주어 말했다. 대장동 특혜 의혹 사건이 뒤통수를 짓누르기 때문일 거다. 검경에 공수처, 사법부까지 한 손에 틀어쥔 대통령 앞에서 이재명은 한없이 작아져야만 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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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끝까지 도와달라”고 화답했다. 임기 끝까지인지, 그 뒤까지인지 알 수 없다. 덕담으로 보는 게 온당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현직 대통령이 대선 후보에게 도와달라고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공교롭게도 어제 문 대통령이 “역사적 과오가 적지 않지만 성과도 있었다”고 애도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자신을 대선 후보로 지명해준 전임 전두환 대통령을 한겨울 백담사로 ‘유배’시킨 장본인이었다.

전두환은 2017년에 낸 회고록에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고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고락을 함께한 평생 동지 노태우가 후임 대통령이 되었으니 걱정할 일은 없어 보였다’고 썼다. ‘나의 친구 노태우에 대한 나의 신뢰는 확고했다’는 문장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건 물론이다.

한 페이지만 넘어가면 ‘행복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대선 TV연설에서부터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하더니 당선 뒤 여소야대 국회가 되자 5공 청산을 명분으로 전두환 사과→재산 헌납→백담사 귀양을 밀어붙이더라는 거다.

문 대통령은 5공 청산을 고인의 성과로 언급하진 않았다. 전두환이 믿었던 친구를 대통령으로 세웠으나 개인적으론 배신당했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가 일보 전진할 수 있었다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문 대통령도 믿었던 대선 후보를 위해 ‘김오수 검찰’의 얼렁뚱땅 수사로 대장동 의혹을 덮고 대선을 치른다면 정권 재창출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대통령이 된 이재명이 전임 대통령의 은혜를 언제까지나 기억할지는 알 수 없다. 현 정권이 끝나도록 1심 판결도 안 난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이나 ‘문재인’이라는 단어가 3번,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40번 넘게 등장하는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의 책임을 묻는 ‘적폐청산’에 나설지도 모르는 일이다. 문 대통령 입장에선 인간적 배신을 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럴 바엔 차라리 26일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국정감사에서 밝혔듯, 대장동 특검을 하는 것이 당당하다. 유영민은 “청와대도 굉장히 비상식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장동 의혹은 국민 70%가 특검을 요구하는 사안이다. 이미 상설특별검사법이 존재한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핑계일 뿐 국회 의결을 하든가, 법무부 장관이 요청하면 될 일이다. 신속히 특검을 출범시키되 검찰은 그때까지 망신당하지 않게 수사하면 그만이다.

이재명은 잘못이 없다면 깨끗하게 털 수 있어 좋다. 전화위복이 돼 대선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을 것이다. 특검이 더러운 진실을 밝혀낸다면, 설령 정권을 잃더라도 문 대통령은 박수 받으며 떠날 수 있다. 권력을 놓고 겨루는 오징어게임에서 깐부는 미안하지만, 없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오징어게임#문재인#이재명#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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