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완준]“文정부 종전선언 추진은 전쟁 피해자들 잊겠다는 것”

윤완준 정치부 차장 입력 2021-10-25 03:00수정 2021-10-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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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완준 정치부 차장
92세 강중현 씨.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 7월 부산에서 입대했다. 그가 배속된 8사단 21연대 1대대 화기중대는 그해 10월 38선을 넘어 평안북도까지 진격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평안남도 영원전투에서 중공군의 포로가 됐다. 중공군은 국군포로들을 폐광이나 마구간에 가둬 놓았다. 전투 때는 총알받이로 내몰았다. 전쟁포로에 대한 대우를 규정한 제네바 협약을 위반했다. 강 씨는 1951년 2월 강원 횡성에서 국군 진지로 내달려 탈출했다. 그는 오히려 월북자 취급을 받으며 거제포로수용소에 수감됐다. 북한으로 강제송환을 당할 처지에 놓이자 필사적으로 송환을 거부해 반공포로로 석방됐다.

강 씨는 1999년 국방부로부터 참전용사 증서를 발급받았지만 포로 기간을 군 복무 기간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군 미필로 처리됐다. 그는 인권단체 물망초의 도움으로 20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냈다. 북한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청하는 여러 신청서들이 이날 함께 위원회에 접수됐다.

6·25전쟁으로 인한 각종 피해의 상당수가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6·25전쟁 뒤 유엔이 발표한 국군포로의 수는 8만2000명에 달한다. 하지만 북한이 휴전협정으로 돌려보낸 국군포로는 8300명뿐이다. 북한은 국군포로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6·25전쟁 때 납북된 피해자는 1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의 존재 역시 북한은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 없다.

정부는 임기 말 종전선언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작 종전을 위해 반드시 들어가야 할 요소들이 빠져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한다. 법학자인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은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지, 전쟁 동안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이고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확실히 규정하고 법적 책임을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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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종전선언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종전선언이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된 것 같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에 6·25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인식과 고려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22일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미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72)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71년이 지났지만 우리에겐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현재진행형입니다. 북한은 납치 피해자 10만 명의 생사 확인에 한 번도 협조한 적 없어요. 수많은 전쟁 피해자 문제에 대해 아무런 해결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피해자들에게 묻지도 않고 종전을 선언하겠다는 것인지…. 전쟁 피해자에 대한 고려 없는 종전은 허상이고 그림자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흐느끼던 그는 “그런 종전선언은 피해자들에게 새로운 전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진상 규명도 없고 가해자들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고 ‘전쟁이 끝났다’ 하면 우리는 완전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잖아요. 납치 피해자 가족들한테는 생각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일이에요….”

윤완준 정치부 차장 zeitung@donga.com
#문재인 정부#종전선언 추진#정치적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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