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원수]압수수색은 수사의 처음이 아니다

정원수 사회부장 입력 2021-10-25 03:00수정 2021-10-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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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차 압수수색’은 ‘봐주기 수사’ 의심 키워
국민 눈높이 못 따라가는 수사기관 도태될 것
정원수 사회부장
십수 년 전의 일이다. 당시 정권 핵심 인사가 연루된 의혹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은 수사 착수 한 달 만에 그 인사의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이 인사가 의혹의 중심이라는 말은 진작 나왔지만 보름 전의 1차 압수수색 대상은 아니었다. 당시 검찰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압수수색은 수사의 처음이 아니라 끝인데….” 증거 인멸 등의 기회를 주는 ‘시간차 압수수색’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정권 핵심 인사가 개입된 증거를 찾지 못했다면서 수사를 종결했고, 결국 특별검사가 다시 수사해야 했다.

요즘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의 수사를 놓고 검찰 내부가 시끄럽다. 무엇보다 ‘시간차 늑장 압수수색’이 의심을 키웠다. 전담수사팀 구성 첫날인 지난달 29일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자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사무실 등을 1차 압수수색했는데, 당시 성남시청 등은 빠졌다. 전담팀 구성 16일 만에 성남시청을 압수수색했지만 그때도 시장실은 제외됐다. 성남시청 압수수색 엿새 뒤에야 시장실이 포함됐다. 시장실의 압수수색 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돼 늦어진 게 아니라 수사팀이 처음에 청구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관련 수사 경험이 있는 한 검사는 “성남시청을 압수수색하면서 시장실을 안 한 건 코미디”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에 비유하자면 자치단체장은 그룹 회장이고, 지방공기업 사장은 계열사 사장과 같은 위치”라고 전했다. 지방공기업법상 지방자치단체장은 공사의 업무를 관리 감독해야 한다. 대장동 사업을 주관한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성남시가 100% 출자한 곳이다. 수사팀이 지자체와 공사 간 보고 과정을 수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수사팀 입장에선 증거를 수집해서 단계적으로 접근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비판을 자초한 건 검찰이다. 대장동 의혹이 처음 불거진 게 올 8월 말이고, 9월부터는 세간의 최대 관심사가 됐다. 그런데도 검찰은 내사를 통한 기초 작업을 하지 않다가 야당의 고발장 접수 이후 전담수사팀을 구성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첫날부터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의 휴대전화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더니, 유 전 직무대리의 구속영장에는 배임 혐의를 성급하게 넣고 20일 구속 수사 뒤 공소장에서는 빼버렸다. 증거가 있는 뇌물 사건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핵심 관련자의 대질조사를 서두른 것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십수 년 전 그 사건처럼 수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자 수사하는 것처럼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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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 등으로 수사기관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높이가 크게 높아졌다. 주요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이 연루된 의혹 수사를 멈췄거나 봐준 것은 과거 검찰이었고, 그런 행태를 더 이상 반복하지 말자는 것이 이른바 검찰개혁의 동력 중 하나였다. 그런데 경찰은 올 4월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화천대유의 의심 거래 내역을 통보받고, 계좌추적 영장을 6개월 동안 신청하지 않았다. 수사를 회피한 것이다. 고발 사주 의혹을 수사 중인 공수처는 국회 의원회관을 두 차례 ‘빈손’ 압수수색했다.

선거를 앞두고 주요 수사를 미적거리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이제는 공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위한 경쟁이 필요하다.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수사기관은 생존하고, 그 반대의 경우 도태될 것이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압수수색#시간차#봐주기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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