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미훈련, 통일부 ‘연기’ 띄우고 김여정 ‘취소’ 윽박지르고

동아일보 입력 2021-08-03 00:00수정 2021-08-0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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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이 1일 저녁에 낸 담화에서 한미 연합훈련이 예정대로 실시되면 “북남관계의 앞길을 더욱 흐리게 하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우리는 규모나 형식에 대해 논한 적이 없다. 적대적 전쟁연습을 벌리는가 아니면 용단을 내리는가 주시하겠다”며 취소를 요구했다. 이 담화는 한미가 훈련 규모를 상반기 수준으로 축소해 실시하기로 가닥을 잡아가는 가운데 나왔다.

북한의 연합훈련 취소 요구는 지난주 남북 통신선을 복원하면서 예고됐던 수순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줄기차게 중단을 요구했던 연합훈련을 그냥 넘어갈 리도 없었지만, 사실 먼저 불을 지핀 것은 우리 정부였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통신선 복원 사흘 만에 “연합훈련 연기가 바람직하다”며 연기론을 공식화했다. 남북 정상이 주고받았다는 친서에 연합훈련에 관한 사전 교감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여정 담화는 통신선 복원 이후 여권 일각에서 제기된 4차 남북 정상회담 같은 들뜬 기대에도 “때 이른 경솔한 판단”이라고 찬물을 끼얹었다. “섣부른 억측과 근거 없는 해석은 도리어 실망만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북한의 통신선 복원 조치는 관계 개선에 목매는 이 정부를 향한 밑밥에 불과했다. 그런데 통일부는 그걸 덥석 물어 훈련 연기론을 제기하고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 아예 취소하라고 윽박지른 것이다.

정부는 벌써부터 갈팡질팡하는 분위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제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얼버무렸다. 오히려 여당 대표와 국회 국방위원장이 나서 “예정대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 사회 내부의 남남(南南) 갈등은 물론 여권 내부까지 흔들어놓은 형국이다. 연합훈련의 공동 주체이자 핵심 주관자인 미국은 “양국이 결정할 문제”라며 원론적 입장만 내놓은 채 동맹을 향해 불안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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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연합훈련은 지난 3년 넘게 대규모 실기동훈련도 없이 규모를 대폭 축소한 채 지휘소훈련으로만 실시되고 있다. 이미 앙상한 뼈대만 남은 상황인데, 북한의 요구로 연기 또는 취소된다면 앞으로 한반도에서 연합훈련은 영영 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군사는 외교를 지원하는 수단인 만큼 유연한 조정이 필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일체의 비핵화 대화를 거부한 채 지금 이 시간에도 중단 없이 핵물질을 생산·축적하고 핵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한미훈련#통일부#연기#취소#김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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