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수용]“한국은 빨리 뛰면 혼내는 사회”

홍수용 산업2부장 입력 2021-06-11 03:00수정 2021-06-1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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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명분 규제에 발목 잡힌 신사업
K유니콘은 제자리 지키기도 버겁다
홍수용 산업2부장
“기업과 기업은 원래 갑을 관계다. ‘파트너십’이라고 해도 돈 주는 쪽과 받는 쪽이 있는 한 완전히 동등한 협력은 없다. 파트너 관계를 끝내야 할 때가 되면 공정 논란이 생기고 정부 규제가 작동한다. 파트너십을 늘리지 말고 가까운 회사와만 거래하고 싶다.”

기업 간 서열이 있다고 보고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비판하는 옛날식 사고에 빠진 기업인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요즘 취업준비생들이 선호하는 ‘네카라쿠배당토직(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토스 직방의 앞 글자를 합친 말)’ 중 한 곳의 최고경영자(CEO)가 들려준 말이다. 그는 “규제 때문에 스타트업계가 우울증에 걸릴 정도”라고 했다.

현 정부가 규제개혁을 마냥 외면한 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0월 4차 산업혁명위원회에서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약속했다. 지난달 김부겸 국무총리도 “진정한 규제혁신은 규제가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게 변화해 나가는 것”이라는 멋진 말을 했다. 현 정부가 말로 보여준 개혁 의지만큼은 박근혜 정부의 손톱 밑 가시 뽑기 못지않았다. 기업들이 개혁에 기대를 걸었다가 실상에 절망하는, ‘희망 고문’과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반복되는 게 문제다. 이런 악순환에는 재계 단체의 뻔한 건의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 매뉴얼을 만들어두고 건의사항을 내라고 하면 서랍에서 해묵은 규제개혁 리스트를 꺼내 줄줄 읊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 정도다.

‘네카라∼’ 기업인이 규제를 보는 시각은 재계 단체보다 직설적이어서 피부에 와 닿는다. 한 정보기술(IT) 기업 CEO인 A는 한국형 규제의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나는 현 정부가 강조하는 ‘사람’과 관련돼 있다. A는 처음에 사람을 늘려서 기업을 빨리 키우려 했다. 정작 사람이 많아지면서 공정한 분배 이슈에 직면했다. 성과급을 나누는 것부터 인사와 갈등 조정까지 관련 규제가 한둘이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 고용노동부의 엄중한 특별근로감독도 받는다. 부당한 노무 문제가 생기면 항상 엄중하게 감독해야지 ‘특별하게 엄중한’ 감독이란 게 뭔지 모르겠다. A는 어떻게 하면 사람이 더 늘지 않게 할까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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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미스매치는 더 근본적인 문제다. 스타트업계는 빨리 출발한 뒤 가속도를 붙이는 게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신구(新舊)의 갈등이 생긴다. ‘타다 사태’를 보면서 스타트업들은 ‘한국은 빠르게 뛰면 정부와 기득권에 혼나는 사회’라는 생각을 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타다와 택시업계의 갈등을 조정하면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이라는 고릿적 법을 ‘땜질’했다. 더 많은 ‘타다’가 나오게 할 혁신법이라고 했지만 카카오 가맹택시만 늘었고 밤에 택시가 안 잡히는 건 여전하다. 신사업을 하면 기득권의 파이는 줄어든다. 일자리 시장에서 퇴출되는 사람을 배려하는 건 중요하지만 그 고민을 하라고 관련 기관을 둔 것이다. 스타트업에 속도를 늦추라는 걸 해법이라고 내놓는다면 4차 산업혁명위원회, 부처별 규제개혁위원회는 도대체 왜 만든 건가.

A의 목표는 실망스럽게도 해외 동종 기업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라고 했다. 외국에 본사를 두고 있어 규제에서 자유로운 기업이 한국에 상륙하면 규제에 발목이 잡힌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쿠팡이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 2월,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한국 유니콘 기업의 성장 잠재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쾌거”라고 했다. 정작 ‘K유니콘’들은 국내 시장을 수성하는 것조차 버겁다.

홍수용 산업2부장 legma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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