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상훈]원자재發 인플레 압력, 서민에겐 쓰나미급 충격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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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산업1부 차장
이상훈 산업1부 차장
요즘 건설 현장과 물류업계, 인테리어업계는 목재(木材) 대란에 아우성이라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으로 미국 등에서 주택 등 건축물을 짓는 수요가 늘었는데 목재 공급은 수요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목재 선물가격은 1000보드피트(bf)당 1630달러까지 올랐다. 지난해 4월에 250달러대였으니 1년여 만에 6배 이상으로 올랐다.

종류가 무엇이든 특정 원자재 가격이 이 정도까지 폭등하면 산업 현장에서는 정상적인 유통이 불가능해진다. 이미 확보해 놓은 물량을 다른 업자가 웃돈을 주고 가로채기도 한다. 전 세계를 샅샅이 뒤져 겨우 목재를 구했는데 배가 없어 수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글로벌 물동량 증가로 배를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지 오래다. 가격에 민감한 소규모 주택 리모델링 업체들은 이미 인테리어 비용을 연초보다 20∼30%씩 인상했다.

나무 값마저 끌어올린 원자재 인플레이션은 올해 한국 경제 최대 변수다. 철광석 값은 t당 230달러로 1년 새 160% 뛰면서 사상 최고치에 달했다. 철로 제품을 만드는 자동차, 조선업계 등이 철강 값 인상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구리 값은 10년 만에, 알루미늄 값은 3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가격이 오르고 물량이 달리는 건 반도체나 다른 원자재나 마찬가지다.

같은 인플레이션이라도 미국과 한국에 미치는 충격은 차원이 다르다. 미국의 물가 상승은 백신 접종 확대에 따른 경기 회복에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까지 더해져 나타난 전형적인 수요 견인(demand-pull) 인플레이션이다. 경제에 활기가 돌아 수요가 늘어난 데 따른 물가 상승이다.

한국은 아니다. 원자재 대부분을 해외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원자재 값 상승은 한국 내수 경기와 무관한 외부 요인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유사한 비용 인상(cost-push) 인플레이션의 징조이기도 하다. 국내 경기는 살아날 기미가 없는데 수입 원자재가 상승으로 물가가 오르니 감당할 체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불황에 나타나는 물가 상승이 서민들을 얼마나 어렵게 하는지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값 상승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원자재발 인플레이션도 다를 게 없다. 불황에 물가가 오르면 취약계층이 제일 먼저, 가장 큰 피해를 당한다. 최저임금 인상, 고용규제 강화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후유증으로 고용시장이 나빠지고 성장동력이 약화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이들이 인플레이션의 쓰나미급 충격을 받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소득주도성장과 포용 정책에 긍정적 성과가 분명히 있었다”고 평가했다. 인건비 상승으로 밤을 새워 카운터를 지켜야 하는 편의점주와 일자리를 잃은 아르바이트생이 대통령의 말에 공감할 수 있을까. 가뜩이나 얇아진 이들의 지갑은 가파른 물가 상승을 감당하기 벅차다. 코로나19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던 자영업자, 비정규직, 취업 준비생에게 원자재발 인플레이션은 생계를 위협할 요인이다. 서민들에게 닥칠 인플레이션 고통을 정부가 과연 체감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상훈 산업1부 차장 sanghun@donga.com
#인플레#목재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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