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의 ‘사談진談’]댓글과 함께 사라진 ‘기록’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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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서울의 한 여고 3학년 교실 풍경. 최근에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 되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오래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서울의 한 여고 3학년 교실 풍경. 최근에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 되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김재명 사진부 기자
김재명 사진부 기자
‘오늘 가로수길에서 오세훈 후보와 사진을 찍었는데 저와 제 친구의 사진에 달린 공격적인 댓글로 아주 기분이 불쾌했습니다. 사진을 삭제하지 않을 시….’

지난달 서울시장 선거운동 기간에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와 기념사진을 찍었던 한 시민이 기자들에게 보낸 메일 중 일부다. 2030세대에 인기가 없었던 야당은 이번 선거에서 화난 청년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서대문구 신촌, 강남구 코엑스 등을 찾아 젊은이들을 만났다. 주먹인사는 물론이고 기념촬영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사진들은 곧 사라졌다. 야당 후보와 찍은 ‘셀카 사진’이 인터넷에 기사로 나간 후 일부 여당 극성 지지자들의 악플에 시달리다 결국 삭제해 달라고 한 것이다. 이제는 그 사진을 찾아볼 수 없다.

사라진 사진은 또 있다. ‘엄마가 보고 있다’ ‘D-50 수능 대박’ ‘타반 출입금지, 적발 시 엄벌’과 같은 재미난 문구는 수능시험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보기가 쉽지 않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교실 풍경을 찍으러 학교에 가면 선생님은 “공부하는 사진이 신문에 나오면 시험을 잘 친다는 속설이 있다”며 “자연스럽게 담아 달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빨리 찍고 나왔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의 사진에도 외모를 비하하거나 욕설 같은 댓글이 달렸다. 그 수위가 도를 넘는 일이 자주 발생하면서 사진 삭제 요청도 많아졌고, 결국 학교 가는 일이 어렵게 되고 말았다.

댓글이나 초상권 같은 문제가 나타나기 전 일상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들이 있다. ‘HUMAN(인간)’이란 주제로 전통시장이나 주변 사람들을 기록한 사진으로 유명한 최민식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가난하고 낮은 밑바닥 현실을 주로 담았다고 한다. 그의 작업은 아름다움을 추구한 게 아니라 진실을 담는 것이라 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곳에서 그가 기록한 것은 우리의 민낯이었고, 그 기록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감동을 선사하며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골목 안 풍경’으로 유명한 김기찬 작가의 작품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30여 년간 서울역 인근 중림동 골목길을 담은 사진이 대표적이다. 그는 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골목길을 찾았으며, 사진 속 등장인물을 다시 찾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흔한 풍경이었지만 지금은 그가 남긴 사진 한 장 한 장이 귀한 보물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도심 풍경이나 문화, 생활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하루를 기록해뒀던 사진이 나중에 ‘레트로’란 이름으로 다시 소환되거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건·사고뿐만 아니라 일상을 기록하는 뉴스사진들이 ‘댓글’ 때문에 사라지거나 또는 편향된 기록으로만 남는다면 어떨까? 앞으로 더 많은 사진들이 이 같은 이유로 사라진다면 사회·문화적으로 남겨야 할 공공의 자산이 증발하는 것 아닐까.

국내 포털은 2년 전 악플에 시달리던 연예인이 삶을 저버린 이후 연예뉴스 댓글 제도를 폐지했고, 지난해 한 배구 선수가 세상을 떠난 이후 스포츠뉴스 댓글 서비스를 중단했다.

물론 댓글의 순기능도 있다. 하지만 리얼리티 가득한 사진들이 모르는 누군가에 의해 비난받거나 폄하돼 사라지거나 또는 모자이크 된 채 남겨진다면 우리의 미래 세대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쩌면 더 이상 진솔한 다큐멘터리 사진은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견해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사에는 댓글을 남겨두더라도 ‘현재의 기록’으로 값어치가 있는 사진에는 일정 기간 댓글 창을 닫아보면 어떨까. 그러면 지금보다 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사진들이 ‘오늘의 역사’로 기록되어 미래에 되살아나지 않을까.

김재명 사진부 기자 base@donga.com


#댓글#사라진기록#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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