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원수]‘객관의 의무’ 저버린 검사, 일벌백계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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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왜곡하면서 과거를 바로잡겠다던 과욕
무관용 원칙으로 ‘기획사정’의 배후 수사해야

정원수 사회부장
정원수 사회부장
“어쨌든 나는 검사다.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걸 왜 하겠나.”

1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이었던 이규원 검사(44)는 요즘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공익의 대표자로 일컬어지는 검사는 피의자에게 불리한 증거만이 아니라 유리한 증거도 수집해야 하는 이른바 ‘객관의 의무’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과연 이 검사는 검사로서의 사명에 충실했다고 볼 수 있을까.

올 1월부터 3개월 이상 이 검사 등을 수사해 온 수원지검 수사팀의 공소장 내용은 이 검사의 주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검사는 2019년 1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 접대 의혹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건설업자 윤중천 씨를 여러 차례 만난 뒤 면담보고서를 작성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차관에게 성 접대와 금품 등을 제공한 윤 씨가 하지도 않은 말을 면담보고서에 허위로 기재했다. 예컨대 윤 씨가 만난 적도 없는 검찰 고위 간부들이 윤 씨에게 금품 등을 제공받았다고 기록한 것이다. 같은 해 3월 23일 이 검사는 피의자 신분이 아니면 김 전 차관을 긴급 출국금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짜 사건번호로 입건된 피의자처럼 속여 김 전 차관의 출국을 막았다. 허위 면담보고서를 기자에게 건네 문재인 대통령이 김 전 차관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강조한 당일 관련 보도가 나오게 했다. 출금 나흘 전이었다.

이 검사 측의 해명 내용을 더 살펴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왜 벌어졌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 검사는 평검사 신분 아니냐. 전직 차관을 평검사가 주도해서 출금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2007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이 검사는 중소형 로펌에서 2년 동안 변호사로 활동하다 2009년 경력 검사로 임용됐다. 지인들은 ‘어떤 일이든 의욕적으로 일하는 검사’로 이 검사를 기억하고 있다. ‘검찰 내부 인사에게 칼을 들이대는 업무는 향후 보직에도 좋지 않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그는 진상조사단 근무를 자청했다고 한다.

이 검사는 이광철 대통령민정비서관(50)의 사법연수원 동기이고, 같은 로펌에서 일했다. 이 비서관은 2019년 민정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서 범정부 차원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업무를 맡고 있었다. 검찰이 당시 통화기록 등을 추적한 결과 이 비서관은 검찰의 적폐청산을 담당하던 이 검사에게 수시로 연락했다. 이 검사는 검찰에서 “이 비서관이 ‘법무부, 대검과 조율이 됐으니 출금하라’고 연락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청와대, 법무부, 대검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과거사 진상조사 전 검찰이 김 전 차관에게 여러 차례 무혐의 처분을 한 점 등은 검찰 내부에서도 비판받고 있다. 그렇다고 김 전 차관 사건을 검찰개혁의 동력으로 삼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그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게 하고, 그 며칠 뒤 피의자 신분이 아니면 불가능한 긴급 출금을 해야 했을까.

이 검사가 객관의 의무를 위반하고 있을 당시 기획이라는 말이 군사정부 시절의 공작을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검찰의 부서 이름에서 기획이라는 단어가 모두 사라졌다. 그런 정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이 검사 등 관련자를 일벌백계하고, 무관용 원칙으로 ‘기획사정(企劃司正)’의 배후를 철저히 파헤치는 것 외에 더 이상의 대안은 없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객관#의무#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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