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영]‘에·루·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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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브랜드는 일반 제품과는 다른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비쌀수록 잘 팔린다. 과시적 소비를 하는 ‘베블런 효과’다. 둘째, 사회적 평판에 신경 쓰지 않는다. 기부나 자원봉사 같은 ‘착한 일’에 인색하다. 이 두 가지 특징이 3대 럭셔리 브랜드 ‘에·루·샤’의 지난해 국내 실적 공개에서 다시 확인됐다. 에르메스와 샤넬의 실적 공개는 처음이고, 루이비통은 10년 만이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부분의 소비재 기업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럭셔리 브랜드들은 유례가 드문 대박 실적을 올렸다. 사회적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품 가격을 크게 올린 덕분이다. 루이비통의 매출은 1조467억 원으로 전년보다 34% 늘었고, 영업이익(1519억 원)은 약 3배로 불어났다. 샤넬도 매출(9296억 원)은 감소했지만 영업이익(1491억 원)은 34% 증가했다. 에르메스는 매출액(4190억 원)과 영업이익(1333억 원) 모두 전년보다 16%씩 늘었다. 반면 사회공헌은 쥐꼬리 수준이었다. 국내 기부금은 샤넬 6억 원, 에르메스 3억 원, 루이비통 0원으로 매출액 대비 0∼0.07%에 불과했다. 지난해 국내 100대 기업의 사회공헌 지출액은 매출액 대비 0.14%였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사회공헌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을 받을 때마다 방패막이로 인용하는 해외 실험 연구가 있다. ‘롤렉스는 공정한 사회를 위해 노력한다’는 광고 문구를 보여줬더니 롤렉스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졌다는 내용이다. 광고가 지향하는 가치가 사치품의 가치(권력 부 명예)와 충돌해 역효과를 냈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고정불변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요즘은 한국에선 배짱 영업을 해도 자국에선 소비자들 눈치를 보는 추세다. 루이비통을 보유한 프랑스 LVMH그룹은 파리 노트르담 성당 재건에 2500억 원을 내놨고, 이탈리아 브랜드 펜디는 로마의 트레비 분수 보수작업에 31억 원을 지원했다. 에르메스와 루이비통은 손세정제와 마스크를, 구찌는 의료용 작업복을 제작해 기부했다. 사회문제나 기후변화에 민감한 MZ세대가 럭셔리 소비의 큰손으로 부상하면서 생겨난 변화다.

▷한국도 지난해 주요 백화점들의 럭셔리 매출에서 MZ세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30∼50%로 늘었다. 이들은 소비활동을 통해 소신을 드러낸다. 비건 로션을 바르고,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며, 투명 경영을 하는 기업의 주식을 산다. 국내에선 처음 나란히 공개된 ‘에루샤’의 실적과 기부액수를 보고 MZ세대가 어떤 가치소비를 할까. 내년에 발표될 에루샤의 실적과 기부금 액수가 궁금해진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럭셔리 브랜드#루이비통#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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