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잘될 거야”[횡설수설/이진영]

이진영 논설위원 입력 2021-03-05 03:00수정 2021-03-0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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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에 맞서다 숨진 19세 소녀가 민주화 시위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지난달 쿠데타 발생 후 최악의 유혈사태가 벌어진 3일 미얀마의 2대 도시 만달레이 시위 현장에서 군경의 총에 머리를 맞고 쓰러진 에인절(또는 찰 신)이다. 그의 티셔츠에 적혀 있던 문구는 시위의 슬로건이 됐다. “다 잘될 거야(Everything will be OK).”

▷에인절은 댄서이자 태권도 사범이었다. 함께 시위 현장에 있었던 친구들은 그가 용감하게 시위를 주도했다고 기억한다. 경찰이 최루가스통을 던지면 그걸 주워 경찰을 향해 되던지고, 시위대가 매운 눈을 씻을 수 있도록 송수관을 찾아 열었다는 것이다. 에인절은 지난해 11월 총선 때 “내 생애 첫 투표”라는 글과 함께 투표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11월 총선은 군부가 부정선거라며 쿠데타를 일으킨 계기다.

▷이번 시위의 주역은 에인절처럼 1995년 이후 출생한 Z세대다. 1988년 민주화운동 세대의 자녀들이다. 군사 정권하에서 나고 자란 부모 세대와 달리 이들은 민정 이양기에 유년기를 보냈고, 이후엔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의 집권하에 살아 자유를 억압하는 군부와는 상극이다. Z세대의 카니발 축제 같은 시위를 보면 민주화운동의 세대교체를 실감하게 된다. 만화 캐릭터 분장에 ‘전 남자친구도 나쁘지만 군대는 더 나빠’ 같은 구호를 외치며 청년들의 참여를 독려하고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한다. SNS에는 국영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참혹한 시위 현장 사진을 올린다.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숨진 에인절의 모습도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졌다.

▷이번 시위는 1962년 미얀마에 군사정권이 들어선 후 세 번째 대규모 민주화 항쟁이다. 1988년 항쟁과 2007년 선황색(샤프란) 승복 차림의 승려들이 주도했던 ‘샤프란 혁명’은 군부의 잔인한 진압으로 끝났다. 이번에도 50명 넘게 숨지는 유혈사태로 번지면서 “미얀마에서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사회가 미얀마 군정을 규탄하는 가운데 미국은 군정을 겨냥한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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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인절은 다 잘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페이스북에 혈액형과 비상연락처, 시신을 기증해 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작별 인사를 남겼다. “이게 마지막 말일지 몰라. 많이 사랑해. 잊지 마.” 미얀마 유혈사태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의 허약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수많은 ‘에인절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1987년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졌던 이한열의 죽음이 수많은 ‘이한열들’을 일으켜 세워 6월 항쟁을 이끌었듯 말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미얀마#쿠데타#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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