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의 힘[동아광장/김금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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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갈등에 삭막한 일상
사람의 마음 녹이는 것은
언제나 온기 어린 말 한마디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최근 이사를 하면서 전날인 일요일에 입주 청소를 했다. 부동산 사장이 권한 날짜라 다른 집들도 으레 그렇게 하겠거니 생각했지만 실수였다. 점검을 위해 새집에 갔다가 경비실로부터 인터폰을 받은 것이다.

“거기 인테리어 공사 해요? 주말에 공사를 하면 어떡해요? 주민들 동의도 받고 안내문도 써야 한다고요.”

나는 공사가 아니라 청소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용하는 대형 청소기나 다른 기기들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뒤늦게 했다. 경비원은 이웃 중 경비실까지 찾아와 항의한 사람이 있다고 전했다. 통화를 끝내고 나니 미안함과 함께 걱정이 몰려왔다. 혹시 까다로운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일 이사 때도 입주 청소 못지않게 시끄러울 텐데 이해를 해줄까, 직접 올라와 따지는 것이 아닐까. 막 청소를 마친 깨끗한 집을 둘러보고 있던 나는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익숙한 공간과 풍경, 별다른 변수 없이 일상이 운영되던 동네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오겠다는 결심은 과연 괜찮은 것이었나 하는, 근원적인 회의까지 들었다.

“이제 그만 가자.”

줄자를 들고 열심히 새집 구상을 하고 있던 가족이 시무룩해진 내 안색을 살폈다. 이후 돌아가는 차 안에서 마음은 더 착잡해졌다. 새집이 한동안 비어 있었던 이유가 혹시 층간 소음으로 마찰이 있어서 그랬던 것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까지 들었다. 가족은 그건 아닐 거라고 했다. 경비원은 분명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찾아왔다는, 그러니까 흔한 일은 아니라는 말투였으니까. 그래도 신경이 쓰인 나는 인터넷으로 입주 청소 소음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주말에 입주 청소를 금지하는 아파트는 생각보다 많았다. 심지어 도배를 할 수 없는 곳들도 있었다.

그렇게 불안 속에서 한 시간 넘게 검색하는 내가 찾고 싶은 건 어떤 ‘룰’이었다. 내가 과연 타인에게 얼마만큼 피해를 준 것인가 하는 판단의 근거를 찾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연락을 해온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찾아가서 미안하다고 하면 되지” 하고 간단하게 정리했다. 인터넷상의 각종 사례들을 찾아 읽으며 따져보던 나는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이 일과 관련해 의견을 물어야 하는 사람은 인터넷 카페 회원들도, 가족도, 경비원도 아닌 불편하다고 말한 그 이웃이었다.

이사 당일, 이사로 불편을 끼쳐 죄송하다는 안내문을 프린트해서 뽑았다. 공사가 아니라 이사 때에도 그런 공지를 붙여야 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다만 이웃을 직접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나로서는 차선을 마련해둔 셈이었다. 새집에 도착해 이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차에 둔 안내문을 가져오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는 아래층에 섰고 문이 서서히 닫히는데 어어, 하는 소리가 났다. 열림 버튼을 눌렀더니 주민 한 분이 고마워요, 하면서 음식물쓰레기를 들고 탔다. 순간 나는 어제 불편을 느낀 그 이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라 해도 아래층 주민이니까 양해를 구해야겠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인사가 먼저 나왔고 ‘비대면’으로 사과하기 위해 적었던 안내문의 문구들이 말로 직접 전해졌다.

놀라운 건 이웃의 반응이었다. 이웃은 어제 일을 자기도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어제 경비실을 찾아간 건 자신의 아이가 맞고, 소리에 좀 예민한 편이라는 것이었다. 사람들끼리 어울려 살려면 이해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자신이 외출한 사이에 경비실을 찾아간 모양이라고. 그런데 아이도 그렇게 행동하고 나서 마음에 걸렸는지 “엄마, 나한테 화내면 안 돼” 하면서 그 얘기를 전하더라고 했다.

“아니에요. 주말에 한 제 탓이 크죠.”

그 말을 들은 나는 정말이지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미리 사정을 살피지 않고 무심히 편의대로 청소를 진행했던 것이, 어젯밤 내내 그 정도 소음으로 항의를 받는 것이 형평성에 맞는지 아닌지를 자의적으로 따지느라 감정을 썼던 것이 부끄러웠다. 대화를 마치고 나는 내일까지는 집 정리를 하느라 소란스러울 수 있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웃은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우리 오늘 어디 가서 이틀 동안 없으니까 마음 놓아요.”

다시 집으로 올라와 가족들에게 얘기를 전하자 모두들 안심한 얼굴이었다. 우리는 이런 봄 날씨에 아이가 어디 놀러가는 거면 좋겠다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짐들이 사다리차를 타고 힘차게 올라오기 시작했고, 그날의 괜찮다는 말은 더할 나위 없는 따뜻한 환영 인사로 마음에 남았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말의 힘#갈등#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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