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의 눈’으로 읽어야 할 한일관계[동아 시론/박철희]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장 입력 2021-02-27 03:00수정 2021-02-27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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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움직임에
일본은 여전히 냉랭한 태도 유지
과거사·북한 중심의 단선적 시각 대신
입체적으로 세계를 보는 거시적 시각 필요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장
한때 반일의 기치를 들고 죽창가까지 언급했던 터라, 최근 한일관계를 개선해 보려는 청와대와 정부의 의지는 신선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태도 변화는 바람직한 행보라고 여겨진다. 우선 ‘피해자 중심주의’에 매몰돼 2015년 위안부 합의를 폄훼하고 ‘화해와 치유 재단’까지 해산한 정부가 2015년 합의는 ‘정부 간 합의였다’고 한 점은 주목된다. 피해자의 관점으로부터 정부로 방점이 이동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라는 ‘사법부 중심주의’로부터 한일 간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한일관계를 사법의 영역에서 ‘외교의 영역’으로 가져오겠다는 긍정적 전환이다. 아울러 압류된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를 늦출 수 있다는 의사 표명은 한일관계의 파국을 막고 행정적 재량 행위의 여지를 남긴 부분이라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엿보인다. 외교협상의 추동으로 현실화될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일본의 태도는 여전히 경직되고 변화가 없다. 냉랭하기까지 하다. 일본 정부는 1965년 기본 조약을 존중하는 바탕 위에서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물러설 기미가 안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가까워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포기하고 넘어가자며 강한 불신을 드러내거나 노력해도 잘되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이 강하다고 전해진다. 한국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와서 미국이 개입하거나 중재를 해주길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일본에서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미국의 충고를 듣고 위안부 합의에 응했는데, 결국 새로운 한국 정부에 의해 합의가 사실상 부정당했으니 순순히 미국 말만 듣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렇다면 한일관계 복원의 기회는 없을 것이라고 기대를 접어야 하는가? 한일 양측 불신의 강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행정부는 민주주의 동맹 국가들의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강도 높게 한일관계 개선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 한국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비핵화의 발길을 내딛지 않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도, 그리고 핵무장 가속화 시 한일의 안보능력 강화를 위해서도 한일관계 개선은 필요하다. 북한의 위협이 가중되고 있는 까닭에, 미국의 핵우산 제공이라는 확장 억지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은 한일의 공통 이익이다. 미중 경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동아시아 국가들 간 협력의 장이라는 ‘숨쉴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한일은 갈등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역사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실마리를 마련하거나 적어도 갈등이 확산하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위안부 문제는 2015년 합의를 존중하는 가운데 정부 간 재협상을 한다면 협력의 물꼬를 틀 수도 있다. 반일을 위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라 피해자들에 대한 조기 보상을 목표로 세운다면 외교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 징용 문제도 청구권 조약의 근간을 흔들지 않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한일 간 확전은 피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일본은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10년 간 담화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확연하게 표명할 필요가 있다. 과거사 문제에 올라타지 않고 갈등을 피해갈 첩경은 없다. 둘째, 역사 이슈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서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공통 가치를 추구하는 ‘한편에 선 파트너’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제주의의 편’이 아닌 ‘민주주의의 편’에 서겠다는 의지를 확인한다면 함께 설 디딤돌이 넓어질 여지가 크다. 셋째, 한국이 미국이 지향하는 ‘동맹네트워크’에서 이탈하지 않고 동북아 지역에서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역할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중국과의 통상적인 거래와 통상, 교류는 안정적으로 유지할 것이라는 원칙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친중적이라거나 미국과의 협력에 모호한 입장을 계속 취한다는 인상을 주는 한, 한일 간 ‘전략적 불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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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와 북한만 바라보는 ‘땅거미’ 같은 단선적 시각이 아니라, 하늘에서 입체적으로 지역과 세계를 내려다보는 ‘매의 눈’ 같은 거시적 시각을 가진다면 한일관계는 진일보할 수 있다. 지역 전략을 공유하면서 정치적 결단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갈등은 관리 가능하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겸 국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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