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해도 ‘우리’가 되고픈 與 의원들

영화 ‘친구’의 대사 같은 이 말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친문 핵심인 황희 장관이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한 말이다. 두 사람은 67년생 동갑내기로 친구처럼 지냈다. 당시 금 전 의원은 여러 경로를 통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표결에서 기권한 일에 대해 공개 사과를 요구받았다. 금 전 의원은 이를 거부했다. “민주당을 떠나라” “사퇴하라” 등 극성 지지층의 문자폭탄이 쇄도했다. 지역구에선 “당에서 금 전 의원을 찍어내기로 결정했다”는 입소문이 돌았다. 금 전 의원은 이후 치러진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금 전 의원이 지난달 말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이 사연이 새삼 떠오른 것은 최근 신현수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논란 때문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왜 우리 편에 서지 않느냐’는 취지로 신 수석을 몰아세웠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누구일까. 언뜻 대통령을 떠올리기 쉽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여의도 정치에 개입하지 않고 있고, 정치게임에 능숙하지 않다는 것이 여권 내부의 공통된 반응이다. 대통령을 둘러싼 몇몇 친문 핵심 의원들, 청와대 일부 인사들과 그들을 따르는 정치전문가그룹이 코어일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체는 명확하지 않다. 금 전 의원도 “황 의원이 얘기했던 ‘우리 쪽’이 정확히 누구를 가리킨 것인지는 지금도 모른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뜻을 가늠할 방법은 있다. 이른바 ‘카톡 문파’로 불리는 극성 지지층의 목소리다. 이들이 카카오톡 대화방, 당 게시판 등 SNS상에서 내놓는 주장은 ‘우리’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이 ‘좌표’를 찍고 문자폭탄, 항의전화를 퍼붓는 대상이 있다면 일단 ‘우리’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의심해 봐야 한다.
‘우리’와 공명하는 ‘카톡 문파’의 위세에 두려움을 느낀 당 지도부와 의원들은 그들에게 끌려가고, 그들의 주장이 민주당 전체의 뜻으로, 다시 국민의 뜻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당 지도부가 머뭇거렸던 법관 탄핵소추안 처리나, 당내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던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중대범죄수사청(가칭) 설치안 등이 탄력을 받고 있는 것도 같은 흐름이다.
들여다보면 민주당이 강경 일색인 것은 아니다. 사석에선 이 같은 당의 행태에 분개하는 의원들이 많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지 않는다. ‘카톡 문파’의 표적이 되면 제2의 금태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토론과 비판정신을 강점으로 하던 민주당이 어쩌다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안타깝다”고 했다. 하지만 내심은 모두가 ‘우리’가 되고 싶을지 모른다. 적어도 말없이 웃고 따라주는 것이 권력이 주는 따뜻한 자리와 보호를 누리는 길이라는 것을 민주당 의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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