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예방,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시작하자[동아 시론/신의진]

신의진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장 입력 2021-01-14 03:00수정 2021-01-1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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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피용 법보다 체계적 대책 마련할 때
‘권역별 폭력 근절센터’와 전문 치료 병행
가해부모 처벌 이후 양육환경도 고민해야
신의진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장
2021년 벽두부터 어린 생명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집에서 어린 자녀들을 돌보고 있는 부모들은 자기 아이의 일인 양 아파한다. 하지만 정부, 국회에서 발표하는 대책들을 듣자니, 정인이와 같은 죽음이 당분간 반복될 것 같아 걱정이다. 경찰 수사를 특별수사대가 맡지 않아서가 아니라, 초동수사에서 전문성과 책임성이 부족해서 정인이가 사망한 것이다. 초동수사나 초기 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은 관련 예산과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현장에 없어서인데, 정부 대책에는 이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다. 심지어 재빨리 통과시킨 법안들마저도 당장 실효성을 담보하기는 한참 먼 법안들이다.

해외 선진국들도 여러 번의 진통 끝에서야 체계적인 아동학대 예방, 수사, 피해자 보호, 피해가족 지원 정책을 만들어냈다. 영국에서는 2000년 함께 살던 고모할머니에게 잔인하게 학대받고 사망한 빅토리아 클림비 사건(128군데 신체 상처, 12번의 발견 기회 놓침) 이후, 정부가 380만 파운드(약 65억 원)를 들여 2년간 장기 조사 이후 108개의 제도 개선을 권고하는 ‘클림비 보고서(Climbie report)’를 내놓았고, 아동법을 처벌 강조에서 예방 중심으로 개정했다. 지역에서도 시행 가능한 아동보호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의도가 없어도 지속적으로 아동을 학대하면 살인죄를 적용하는 등 양형 기준도 엄격해졌다.

우리도 여론에 밀려 후다닥 면피용 정책과 법을 만들어 낼 것이 아니라 최근에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들을 면밀히 조사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세세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아동을 향한 폭력의 예방, 조속한 조치, 전문적 치료와 재활,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와 처벌, 학대 이후의 후견인 지정과 좋은 양육 제공 등 과정을 체계적으로 개선하고 필요한 예산, 행정 체제, 법 등을 마련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국내에서도 다음과 같은 고도의 전문성과 행정적 효율화 방안이 마련되어야 정인이 사례와 같은 죽음이 이 땅에서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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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신고 초기부터 수사와 아동보호를 위해 전문가의 개입을 허용하고, 행정적 협조가 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현재는 초동수사 경찰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 역시 아동 발달과 학대 부모들의 심리에 대해 전문적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체계적 현장 대응 매뉴얼도 없이 사건을 접하고 있다. 그러니 자기표현도 못 하는 아동학대 사건을 잘 다루지 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2004년 발족한 여성가족부의 해바라기아동센터는 종합병원과 경찰관이 협력하여 진료와 심리평가, 수사 과정이 원스톱으로 진행되어 성폭력을 당한 아동과 가족을 체계적으로 돕고 있다. 이 제도를 학대 피해 아동에게도 적용해 ‘권역별 아동폭력근절센터’ 형태로 운영하면 좋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부서인 여성가족부, 보건복지부, 경찰청이 부처 간 장벽을 허물고 서로 협력하여 한 팀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행정 절차와 예산 운용 방안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둘째, 적절한 아동보호기관과 전문적 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가장 이상적인 학대아동 보호기관은 바로 일반가정과 비슷한 형태를 갖춘 위탁가정이지만, 현재 국내 위탁가정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그룹 홈’과 같은 다수의 인원이 거주하는 보호시설에 맡겨지고 있다. 보호시설에 맡겨진 피해 아동은 분리된 초기에 불안과 공포가 심하므로 적절한 치료적 개입 시스템이 함께 제공되어야 한다. 의료 전문가에게 심리적 진단을 받게 하고, 초기에 심리치료, 약물치료 등 전문적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들에 의한 자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또한 신체질환, 정서행동 문제를 보이는 피해 아동도 양육할 수 있도록 특별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전문위탁시설도 지역별로 운영하는 국가적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셋째, 원가정 복귀 프로그램도 마련돼야 한다. 심한 아동학대가 발생할 때마다 원부모로부터 분리시켜 아동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요구가 높다. 그러나 가정으로부터 아이들을 계획 없이 분리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 가정에서 분리된 아동은 복귀 프로그램의 개입 없이 장기간 보호시설에 거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과정에서 애착 대상의 부재로 인해 정상적인 두뇌, 정서 행동 발달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를 놓칠 수도 있다. 따라서 가해 부모가 처벌을 받고 나면, 전문가가 개입하여 면담을 주선하고, 부모교육 등을 통해 제대로 아동을 양육하도록 지원하는 체계적인 원가정 복귀 프로그램의 개발과 관련 전문가의 치료적 개입이 가능한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

신의진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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