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피해 구제엔 소극행정[현장에서/김호경]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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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신고 후 경영난을 호소하는 피켓으로 가득찬 윤형철 신화 대표 사무실. 윤형철 대표 제공
갑질 신고 후 경영난을 호소하는 피켓으로 가득찬 윤형철 신화 대표 사무실. 윤형철 대표 제공
김호경 산업2부 기자
김호경 산업2부 기자
육가공업체 ‘신화’는 한때 유망 중소기업으로 통했다. 2011년 연 매출 680억 원을 올렸고 직원은 140명이 넘었다. 하지만 지금은 법정관리를 받고 있다. 현재 연 매출은 150억 원, 직원은 16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돼지고기를 납품했던 유통 대기업 A사의 ‘갑질’을 신고한 대가다. 신화의 윤형철 대표(46)는 마지막 끈이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언론사에 피해 사실을 호소했다.

A사가 요구한 가격에 납품하려 대출금을 끌어 쓴 게 화근이었다. 턱없이 낮은 가격이었지만 ‘나중에 보전해 주겠다’는 A사 말을 믿었다. 윤 대표는 “A사가 가격 보전은커녕 각종 판촉비를 떠넘겨 갈수록 손해가 늘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2015년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고, 조정원은 48억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A사가 이를 거부하며 기나긴 법정 공방이 시작됐다.

우선 A사는 윤 대표를 명예훼손,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그는 소송에 대응하면서도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에 협조했다. 지난해 11월 공정위는 A사에 과징금 412억 원을 부과했다. 대규모 유통업법 위반 행위에 부과된 과징금으로 역대 최고액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화는 여전히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윤 대표는 2015년 갑질 신고 이후 A사와 거래가 끊기면서 대출금 80억 원을 제때 갚지 못했고 이듬해 기업회생을 신청해야 했다. “곧 망할 회사”라는 말이 돌았고, 어느 업체도 선뜻 거래하려 하지 않았다.

회사를 일으켜 세우려면 피해 보상이 절실했다. 그러려면 대형 로펌을 앞세운 A사와 또 법정 공방을 벌어야 했다. 2017년 A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하지만 A사가 과징금 처분에 행정소송을 내며 변론기일은 행정소송 결과 이후로 미뤄졌다. 그는 “지금까지 5년을 버텼는데 다시 수년을 버티라는 건 중소기업에 문을 닫으라는 얘기”라고 하소연했다.

각종 정부 지원도 그림의 떡이었다. 법정관리 중이어서 신청조차 못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 지원도 각종 인증이 없다는 이유로 받기 힘들었다. 그는 “소송으로 정상 경영이 불가능했다”며 “이런 사정을 얘기해도 다들 ‘규정상 어쩔 수가 없다’고만 했다”며 씁쓸해했다. 중소기업들이 대기업 갑질을 당해도 침묵하는 건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소송으로 이기더라도 그때까지 버티는 게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할 정도다. 대기업 처벌에는 적극적이면서 피해 기업을 위한 지원에는 소극적인 행정이 바뀌지 않는다면, 피해 기업들의 ‘침묵’은 더 길어질 뿐이다.

김호경 산업2부 기자 kimhk@donga.com
#신화#갑질 피해#피해 보상#경영난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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