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권 넘어 日 서도 흐름 탄 K문학… 번역가 키우면 지구촌 대세[인사이드&인사이트]

박선희 문화부 기자 입력 2020-10-30 03:00수정 2020-10-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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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으로 파고드는 한국문학
박선희 문화부 기자
얼마 전 일본에서 손원평 작가의 소설 ‘서른의 반격’ 판권 계약을 진행한 은행나무 측은 “작가에게 전해 달라”는 일본 한 출판사 편집자의 편지를 받았다. 작가의 전작(前作) ‘아몬드’가 올해 일본서점대상을 받자 여러 출판사가 경쟁이 붙은 상황이었다. 한글로 쓴 그 편지에는 자신이 얼마나 손 작가 작품을 좋아하는지, 일본 독자에게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지 등이 정성껏 담겨 있었다. 이진희 은행나무 이사는 “일본 문학이 국내에서 붐일 때 오쿠다 히데오나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작가를 잡으려고 우리도 이렇게 편지를 쓰며 공을 들였다”며 “격세지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올해도 노벨 문학상의 계절은 우리와 별 상관 없이 지나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근 세계 속 ‘한국 문학의 판’은 눈에 띄게 들썩이고 있다. 미국 최고 권위 문학상인 전미도서상을 비롯해 세계 각국 문학상 후보에 연이어 오르내리고 있고, 인기 국내 작가를 잡기 위한 판권 경쟁도 전례 없이 불붙었다.

올 초부터 크고 작은 낭보가 날아들었다. 손 작가를 시작으로 김금숙 작가의 ‘풀’(미국 하비상 최우수 국제도서부문), 김영하 작가의 ‘살인자의 기억법’(독일 독립출판사 문학상), 김이듬 시인의 ‘히스테리아’(전미번역상, 루시엔 스티릭 번역상) 등이 해외 문학상을 받았다.

수상은 못 했어도 영미권의 주요 문학 및 번역상 후보에 한국 문학 작가가 다수 오른 것은 괄목할 만하다. 전미도서상 예심 후보에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를 비롯해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와 재미교포 시인 최돈미 등 한국계 작가 세 명이 오른 건 이례적이다. 소설가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는 최근 영국 더타임스와 가디언, 미 타임지 등 주요 언론에서 호평 받았다. 한류(K-culture)의 선전 속에 ‘K-LIT(케이릿·K-Literature)’ 역시 세계 무대를 향해 예열되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가 다방면에서 감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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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서 통해”… 자생적 수출 비중 늘어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 문학은 해외에서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KL매니지먼트 이구용 대표는 “2005년 에이전시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정부 지원이나 문화 교류 차원 이외의 한국 문학 수출은 없다시피 했다”며 “영미권에서는 한 해 한 건 계약도 힘들었고 경제적 성과를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2008년),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2002년)이 각각 39개국, 29개국에 수출된 것은 한류 콘텐츠로서 한국 문학의 가능성을 확인한 시초였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받으며 한국 문학에 대한 인지도를 높였다. 이런 사례들은 좋은 작품을 발굴할 경우 사업성이 있음을 확인한 계기가 됐다.

과거 한국 문학은 주로 지원 정책의 하나로 해외에 일방적으로 소개됐다. 이 때문에 수출이 는 것처럼 보여도 제대로 된 작품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최근 상황은 다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에 따르면 한국 문학의 총 수출 건수는 2014년 119권에서 지난해 306권으로 3배 가까이로 늘었다. 양적으로도 대폭 성장했지만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 사업을 통하지 않은 수출이 2014년 전체 30%(34권)에서 지난해 70%(210권)로 늘어났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해외 출판사가 저작권 계약을 먼저 한 뒤에 지원 사업에 공모하는 비중도 늘고 있다. 이런 ‘선(先)계약, 후(後)지원’ 사례는 2014년 10여 종이었지만 올 9월 말 기준 109종으로 급증했다. 박소연 한국문학번역원 해외사업1팀장은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진 데다 양질의 번역 전문가도 늘면서 자발적으로 도서를 출판하려는 현지 수요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기관 주도 공모에 뽑히면 번역, 해외 출판사 섭외, 출간까지 2∼3년이 소요되지만 해외 출판사가 자발적으로 계약하면 1년 안에 출간까지 가능해 작품을 시의성 있게 소개할 수 있다. 박 팀장은 “자체적으로 작품과 번역가 선정은 물론 출간과 문학 행사 등 마케팅까지 진행하기 때문에 현지 언론과 독자들의 주목도 역시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불모지’ 일본서 발아하는 ‘케이릿’


현지의 자발적 출간 수요가 늘자 아예 한국 문학 전문 출판사가 생기거나 판권 수입 경쟁이 벌어지는 등 새로운 현상도 나타난다. 지난해 설립된 프랑스의 마탱 칼므 출판사는 ‘K스릴러’로 불리는 한국 장르문학을 전문 출간한다. 초판만 5000부가량 찍는데, 팔린다는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수치다.

한국 소설 시리즈를 신설하기도 한다. 대만의 문학전문출판사 만유자문화는 ‘82년생 김지영’이 히트를 치자 다른 한국 작가에게도 눈을 돌려 ‘김영하 시리즈’ 등을 출간 중이다. 러시아 최대 출판그룹 AST는 2017년부터 자회사를 통해 ‘K시리즈’를 기획해 한강 정유정 작가 등의 책을 내고 있다.

한국 작가에 대한 반응이 좋아지면서 선인세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뛰고 있다. 대개 200만∼300만 원이던 선인세는 최소 10배 이상으로 뛰었다. 중국 대만 일본 등 아시아권에서 특히 뜨겁다. 대니홍 에이전시의 홍대규 대표는 “실제로 경쟁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심해졌다”라고 말한다.

일본에서의 한국 문학 붐은 주목할 만하다. 출판산업실태조사(2013∼2016년)에 따르면 국내 도서저작권 수출에서 아시아는 전체의 85%를 차지한다. 이 중 중국(48.9%) 태국(14%) 등과 달리 일본 수출 비중은 1.9%에 불과했다. 한국 책, 특히 한국 문학과 일본 문학의 수출입 격차가 극심해 ‘불모지’로 통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최근 일본에서 관심을 받고 있는 여성 차별 문제를 선제적으로 다룬 한국 페미니즘 문학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시장성이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2018년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은 15만 부 넘게 팔리며 6개월간 주요 서점 해외문학 판매 1위를 기록했다. 최은영 ‘쇼코의 미소’, 정유정 ‘7년의 밤’ ‘종의 기원’, 김애란 ‘바깥은 여름’ 등이 소개돼 주목받았다. 일본 출판계에서 “영미 소설보다 한국 소설 반응이 확실하다”는 인식도 생겼다.

한류의 후광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김수현 작가의 에세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일본에서 24만 부가 팔리는 ‘빅 히트’를 쳤다. ‘BTS(방탄소년단)가 읽는 책’으로 알려지며 이슈 몰이를 했다. 김 작가의 신작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는 일본에 선인세 2억 원에 계약됐다. 홍 대표는 “일본 출판사들은 소설을 검토할 때 어떤 셀럽(명사)이 읽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홍보한 이력이 있는지 반드시 문의한다”며 “한국 문학 역시 K컬처 덕을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한한령(韓限令)이 풀리며 수요가 폭발 중이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세계 최대 출판 시장인 미국 저작권 수입이 주춤한 것이 한국에 반사 효과를 주고 있다.

○ 정보망 체계화-번역자 집중 육성 필요


케이릿의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해서 한국 문학을 ‘한류’라 부를 수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일본 등의 케이릿 붐이 지속될지도 확신하기 어렵다. 하지만 “과거와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출판계는 진단한다. 민음사 저작권부 남유선 이사는 “지금까지는 해외 에이전트나 편집자에게 우리 작품을 한번 읽게 하는 데조차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적어도 지금은 작품이 검토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 매우 중요한 변화”라고 말했다.

한국 문학이 해외 메이저 출판사의 관심 영역으로 편입되면서 좋은 작품이란 판단이 들면 출간으로 이어진다. 김혜진 작가의 장편 ‘딸에 대하여’는 영국 내 세 출판사가 경합해 피카도르가 판권을 가져갔다. 프랑스에서는 갈리마르와 계약했다.

문학동네 창비 민음사 등 대형 단행본출판사들은 수출 관련 업무가 늘면서 저작권 부서를 독립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수출 에이전시도 늘었다. 이구용 대표는 “한국 문화 전반의 인지도 상승 등이 작용해 한국 문학도 결실의 발판, 붐의 초기 단계에 진입 중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런 흐름을 대세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우수한 번역 전문가 양성뿐 아니라 체계적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 홍대규 대표는 “결국 여전히 진입이 쉽지 않은 영미 시장에 진출해야 세계로 뻗을 수 있다”며 “우수한 번역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체계적으로 번역을 지원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찬수 책문화콘텐츠연구소 대표는 문학 수출 현황을 공유할 통합전산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박 대표는 “한국 문학에 대한 현지 출판사나 에이전시의 관심은 높지만 막상 객관적 자료가 없어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며 “어떤 작품이 어떤 언어권에 소개됐는지 알려주는 객관적 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면 판권 계약에 도움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영어, 일본어 등 일부 언어에 집중된 지원을 중동, 동남아 등지로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문화부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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