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미지급은 아동 학대다”[현장에서/이청아]

이청아 사회부 기자 입력 2020-10-30 03:00수정 2020-10-30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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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부지법에서 강민서 양육비해결모임 대표가 무죄 판결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양육비해결모임 제공
이청아 사회부 기자
“피고인은 게시 글에서 양육비 지급 필요성을 강조했을 뿐, 고소인에 대한 증오나 분노 등 사적 감정은 찾아볼 수 없다.”

29일 서울서부지법 형사7단독(부장판사 유창훈)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시민단체 ‘양육비해결모임’의 강민서 대표에 대한 1심 선고를 내렸다. 이날 관심이 쏠린 건 강 대표 등이 온라인사이트 ‘배드 페어런츠(Bad Parents)’를 통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해왔기 때문이다.

결과는 무죄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허위사실을 게시할 동기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이같이 판시했다. 이는 올해 1월 무죄 판결을 받은 ‘배드 파더스(Bad Fathers)’ 운영자인 구본창 대표를 떠올리게 한다. 역시 양육비 미지급 부모들을 공개한 구 씨에 대해, 당시 재판부는 “다수가 고통 받는 상황을 알리고 지급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했다.

이런 판결들은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을 되돌아보게 한다. 여성가족부의 ‘2018년 한부모 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홀로 자녀를 키우는 부모 중 전 배우자로부터 한 번도 양육비를 받지 못한 이가 73.1%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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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셋을 홀로 키우는 A 씨도 그중 1명이었다. 이혼 뒤 5년 동안 양육비를 받지 못한 그는 식당 월급 100여만 원으로 버텨야 했다. 그런데 배드 파더스가 전남편에게 신상 공개를 사전 통보했더니, 1주일 만에 밀린 양육비를 모두 보냈다고 한다. 배드 파더스에 따르면 A 씨처럼 사전 통보만으로 양육비를 받은 게 400건이 넘는다.

물론 개인이 자의적으로 판단해 타인의 정보를 공개하는 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8일 운영자가 구속된 ‘디지털 교도소’는 공익을 표방해 성범죄자 신상을 공개했지만, 무고한 사람이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양육비는 아이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 학대’와 다름없다”며 “프랑스나 독일 등에선 징역형까지 선고가 가능하다. 한국도 형사처벌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한부모 가구는 약 154만 가구(2018년)에 이른다. 여가부 조사를 적용해 보면, 양육비 도움을 못 받고 아이를 키우는 집안이 113만 가구나 된단 소리다. 이날 무죄를 선고받은 강 대표는 “받지 못한 양육비는 국가가 먼저 지급한 뒤 미지급 부모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양육비 대(代)지급제도’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다”고 꼬집었다.

14일 정부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는 “장기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 공개를 위한 근거 규정을 마련할 방침”이라 밝혔다. 반가운 소식이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미 한부모와 아이들은 상처를 받을 만큼 받았다. 그들을 보듬어줄 노력은 한시가 급하다.

이청아 사회부 기자 clearlee@donga.com
#양육비#미지급#아동 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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