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와 종진화초[오늘과 내일/서정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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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사이에 끼인 한국의 딜레마
동맹 원칙과 실력으로 극복해야

서정보 문화부장
서정보 문화부장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양국(한미)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세계적 그룹 BTS가 한미 우호의 상징인 ‘밴플리트 상’을 받을 때 리더 RM(본명 김남준)이 밝힌 수상 소감이다. 제임스 밴플리트는 1950년 6·25전쟁 때 참전한 미8군사령관으로, 이 상은 미국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가 1995년부터 한미관계 증진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수여한다.

이 평범한 소감에 중국 관영신문인 환추시보가 “‘양국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라는 수상 소감에 중국 누리꾼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비난성 기사를 실으면서 논란이 일었다. 환추시보는 이후 ‘BTS는 중국 팬 필요 없다’는 한국 누리꾼 반응까지 기사화하면서 비난을 멈추질 않았다.

최근 무역과 동맹 문제로 미중 갈등이 심각해지자 중국은 최근 자국 내 이념적 단합을 위해 6·25전쟁을 들고나왔다. 6·25전쟁은 미국과 중국이 맞붙은 유일한 전쟁이며,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움) 전쟁으로 부른다. 이런 상황에서 BTS의 발언같이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발언은 ‘싹부터 잘라야 할’ 것으로 여긴 것 같다. 중국은 최근 6·25전쟁을 ‘제국주의 침탈에 대항한 정의의 전쟁’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고른 건 분명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보도에서 “한국의 K팝 거인에게 싸움을 건 중국이 패배했다. 이길 수 없는 상대를 골랐다”고 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두꺼운 팬층을 가진 글로벌 아이돌에게 중국이 낡은 이념의 폭격을 가한다면 중국의 이미지만 나빠진다는 WP의 기사 내용에 100% 공감한다. 이는 BTS가 그동안 쌓아온 탄탄한 실력과 인기가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BTS 발언 논란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소국(小國) 대한민국이 걸어가야 할 길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2500년 전 중국 춘추시대 강대국은 진(晉)나라와 초(楚)나라였다. 기존의 강국인 진과 떠오르는 강국 초는 11번이나 전쟁을 벌일 정도로 앙숙이었다. 두 나라 사이에 끼어있던 정(鄭)나라는 늘 양쪽으로 얻어터지기 쉬운 신세였다. 하지만 정나라의 재상 정자산(鄭子産·미상∼기원전 522) 때는 달랐다. 사서에 많은 일화가 있지만 요약하자면 두 강대국에 할 말 다하면서도 무시당하지도, 억울한 불이익을 받지도 않았다. 공자가 ‘옛 사람의 유풍을 이어받아 백성을 사랑했다’고 극찬했던 명재상 자산의 외교적 성공은 ‘종진화초(從晉和楚)’라는 확고한 원칙과 내치의 성공에 따른 국력의 증가 덕이었다.

종진화초가 둘 다 친하게 지내자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진나라를 따르지만 초나라와도 화친한다는 것으로 선후를 분명히 했다. 정나라가 중원 국가이자 같은 문화권인 진나라와 동맹을 맺자 초나라가 정나라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또 진나라에도 동맹을 근거로 합리적 요구를 해서 진나라가 양보했던 일화가 여러 번 등장한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가 최근 “반중(反中) 군사동맹에 동참해 중국이 보복하면 미국이 우리를 보호해줄 수 있겠나”라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문 특보의 큰 뜻은 모르겠지만 외교 문외한이 볼 때는 문 특보보다 2500년 전 자산의 원칙이 훨씬 더 외교답게 보인다. 6·25전쟁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적어도 역사와 군사 문제에선 중국과 대한민국이 함께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줬다. 문 특보의 말대로 대한민국이 정나라처럼 ‘존재적 딜레마’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보복을 우려만 하고 있어야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서정보 문화부장 suhchoi@donga.com
#방탄소년단#종진화초#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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