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횡설수설/박중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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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과학연구선 ‘아카데미크 켈디시’에 탄 국제 연구진은 최근 러시아 북쪽 랍테프해(海) 350m 깊이 대륙붕에서 ‘북극의 방귀’를 발견했다. 오래전 퇴적된 동식물 사체가 분해되면서 발생한 메탄가스가 저온, 고압의 물속에 얼어붙어 있다가 수온이 높아지자 미지근한 사이다 병마개를 딸 때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에 높아진 기온이 북극 바닷속 메탄가스를 깨워 온실가스를 더 늘리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제 국회 시정연설에서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을 같게 해 순(純)배출량을 제로(0)로 맞추는 탄소중립 달성 시점을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언급한 것이다. 2050년 탄소중립은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권고한 목표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동의한 나라들은 올해 말까지 이와 관련한 비전 및 달성 방안을 내야 한다.

▷문 대통령에 이틀 앞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도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내놨다. 일본 언론들은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일본 전력 생산의 77%를 차지하는 석탄·석유·액화천연가스(LNG) 등 화력발전 비중을 낮추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6%까지 떨어진 원전 가동을 늘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지난달 시진핑 국가주석이 유엔 연설에서 2060년을 탄소중립 실현 시점으로 제시한 중국도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에 투자하는 동시에 현재 48기인 원전을 10년 안에 110개로 늘리는 계획을 추진한다.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원전을 늘리지 않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어렵다는 뜻이다.

▷급속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한국이 어떻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가 어려운 과제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석탄발전, LNG발전 가동을 대부분 중단하거나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탈원전으로 원전 비중이 15%까지 떨어질 경우 수소발전 5%를 제외하고 신재생에너지 발전으로 80%를 채워야 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태양광으로 이 정도 전력을 생산하려면 서울시 면적 7배 크기의 태양광 설비가 필요한 것으로 추산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탄소 감축은 가야 할 길이다. 하지만 앞으로 30년간 각국은 자국에 주어진 자연환경, 산업 경쟁력 등을 고려해 유리한 선택을 하기 위해 치열한 눈치작전을 벌일 것이다. 현실적이고 치밀한 전략 없이 ‘착한 나라’ 되는 데에만 신경 쓰다간 산업 경쟁력 약화, 일자리 상실 같은 후유증을 피하기 어렵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탄소중립#러시아#시정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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