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정권[오늘과 내일/정연욱]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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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제 檢총장 찍어낼 수 없는 딜레마
秋-與, 돌격대 총대 멨지만 성과는 의문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윤석열 검찰총장의 22일 대검찰청 국정감사를 지켜본 여권 인사들의 심경은 복잡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작심 발언을 예상했지만 여당 의원들의 발언 하나하나에 토를 달며 허점을 파고드는 반격까지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불과 1년 전 인사청문회 때와 180도 달라진 여당의 태도를 굳이 거론할 필요는 없겠지만 사실상 인사와 수사지휘권을 박탈한 ‘식물총장’을 만들어 놓고서 “왜 수사 지휘를 제대로 못했느냐”고 따지는 장면은 보기에 불편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 총장을 겨냥해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총장으로서 선을 넘었다”고 비난했지만 추 장관이 과연 정치적 중립을 강조할 자격이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법무부 장관의 구체적 사건에 대한 검찰총장 지휘권은 정치권력의 검찰수사 개입을 통해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공정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아서 수사지휘권 규정이 있는 국가에서도 가급적 행사를 자제해왔다. 그런데 추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벌써 두 차례나 윤 총장 개인을 겨냥한 공격무기로 활용했다. 윤 총장이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멈추라는 여권의 뜻을 따랐다면 아마 이런 참사는 없었을 것이다.

여권과 윤 총장은 서로 선을 넘은 분위기다. 문제는 2년 임기가 보장된 검찰총장을 중도 사퇴시킬 만한 명분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적과 동지’ 피아(彼我)구분이 분명해졌다고 해서 총장직을 박탈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정치적 딜레마다. 그래서 총장 임면권을 쥔 청와대는 뒤로 빠진 채 추 장관과 거여(巨與)가 윤 총장을 향해 망신을 주는 돌격대를 자처했다. 총장 주변의 수족이 잘리고, 총장 권한인 수사지휘권까지 뺏기는 모욕을 당하면 자진해서 물러날 거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강경 ‘문빠’들의 집중 포화를 받은 금태섭도 비슷한 처지에 내몰렸다. 당론투표 거부를 빌미 삼아 자신을 징계한 당 윤리심판원의 재심 결정이 5개월 가까이 미뤄지자 금태섭은 끝내 탈당했다. 국회의원의 징계 사유를 명시한 당규엔 당론 거부 항목이 아예 없어 금태섭의 주장을 반박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이 ‘양념’이라고 감싼 ‘문빠’를 외면할 수 없는 딜레마였다. 그래서 재심 결정을 마냥 미뤘는데 금태섭이 먼저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윤 총장은 자진 사퇴 가능성을 일축하고 “남은 임기까지 물러나지 않겠다”고 받아쳤다. 여권의 모욕·망신주기 공격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여권의 딜레마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여권으로선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사건 수사가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추 장관과 여당 노선에 직격탄을 날린 윤 총장을 그대로 안고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여권의 윤석열 사퇴 공세가 노골화될수록 정치 행보 가능성을 열어놓은 윤 총장의 정치적 몸값만 커지게 된다.

추 장관은 다시 윤 총장을 겨냥한 감찰 카드를 집중적으로 던지며 포위·압박 공세 2라운드에 들어갔다. 검찰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민주적 통제를 거부 말라는 최후통첩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검찰권 남용이 아니라 장관 권력 남용이 더 문제 아닌가. 민주적 통제가 그 지휘의 적절성을 무시한 채 ‘집권세력의 명령을 왜 거부하느냐’는 왕조시대 논리로 전락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이제 추-윤 갈등은 포장지로 적당히 가린다고 해서 가려질 상황이 아니다. 딜레마 정권이 감추려고 하는 속사정도 웬만한 사람들은 알 만큼 다 알고 있다. 펀드 사기사건에 여야 가리지 않는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면 될 일에 윤 총장만 때리는 모양새는 볼썽사나울 뿐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딜레마 정권#정연욱#오늘과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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