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은 대화 매달리고, 軍은 ‘北 만행 발표’ 셀프 물타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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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 피살된 사건과 관련해 “일어나선 안 될 유감스럽고 불행한 일”이라며 “정부로서는 대단히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과에 대해선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인다”며 남북 대화의 복원을 요청했다.

사건 발생 엿새 만에 처음 나온 대통령의 공식석상 발언인데 그 시간의 간격만큼이나 인식의 괴리도 크게 느껴진다. 그간 국민들은 북한의 만행에 대한 분노와 함께 우리 정부와 군이 과연 제대로 대응했는지 따져 물으며 문 대통령을 주시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관련 회의를 주재한 것은 사건 발생 닷새 만인 그제 안보관계장관회의가 처음이었다.

문 대통령 발언에서 북한에 대한 규탄이나 책임 추궁은 보이지 않았다. 유가족의 상심과 비탄, 국민의 충격과 분노를 언급했지만, 정작 유가족과 국민이 분노하는 북한의 민간인 사살과 수색작업 협박은 거론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김 위원장 사과를 “사상 처음이며 매우 이례적”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김 위원장도 심각하고 무겁게 여기고 있음을 확인했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북한을 향해 대화채널의 복원을 요청했다. 서둘러 사태를 수습하자는, 그래서 대화의 불씨를 살리고 협력의 물꼬를 트는 계기로 삼자는 인식인 것이다. 북한에 대한 구체적 요구사항도 군사통신선 복원 하나였다. 사실 규명의 필요성은 얘기했지만 공동조사 요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기류를 읽었다는 듯 군 당국은 어제 “우리 정보를 객관적으로 다시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북측이 우리 국민을 최초 발견하고 구조하려 했던 정황이 있었다는 새로운 정보도 내놓았다. 시신 소각 등 당초 발표의 신뢰도를 스스로 허물어뜨리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이러니 군이 북측 해명에 맞춰 정보를 수정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공동조사가 이뤄져도 실질적 검증 없이 정보만 맞춰보는 요식행위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는 것이다.

정부는 국민을 보호할 책임과 함께 국민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보이지 않다 국민 분노가 한 고비 넘은 듯하자 수습을 강조하고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는 모든 결과에 책임져야 하지만 그 과정도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국방부#북한 만행 발표#북한 우리 국민 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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