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방화’ 산불[횡설수설/송평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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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살 만한 행성을 찾아 성간(星間)여행을 떠나게 하는 것은 지구가 건조해져 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사는 미국 중서부에는 모래바람이 끊임없이 분다. 창문을 틀어막아도 집 안 곳곳이 먼지투성이다. 식사에는 가뭄에 강한 구황작물인 옥수수로 만든 음식만이 올라온다. 밖에서는 가뭄으로 극성을 부리는 병충해를 막느라 옥수수 밭에 불을 지른다.

▷‘인터스텔라’가 영화적 상상력을 발휘해 우려한, 극단적으로 건조한 기후의 전조 같은 것이 거세지는 산불일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리건주 워싱턴주 등 서부에서 올 7월 말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산불은 우리나라의 20%에 해당하는 면적을 태우고 아직도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9월부터 올 5월까지 9개월간 이어진 호주 남동부 산불은 최근 10년간 발생한 전 세계 산불 중 최악이었다. 우리나라 면적의 63%를 태웠다.

▷극지방에서도 산불이 거세다. 지난해 7월에서 9월까지 발생한 시베리아 산불은 우리나라 면적의 30%를 태웠다. 올해도 러시아와 캐나다의 북극 가까운 지방에서 큰 산불이 이어졌다. 극지방의 산불은 한 해 전의 불씨가 땅 밑으로 기어들어가 토탄 속에 겨우내 은신하다 봄에 기온이 올라 축축하던 땅이 건조해지면 지면으로 올라와 부활하는 까닭에 ‘좀비 화재’로 불린다. 지구온난화로 극지방이 더워지면서 좀비 화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하늘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열대지방부터 극지방까지 곳곳이 불타고 있을 것이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남미의 아마존이나 동남아 열대림에서는 팜유와 목재를 얻기 위해 인위적으로 숲을 불태운다. 불은 숲이 품고 있는 이산화탄소를 대량 방출함으로써 온난화를 재촉한다. 온난화가 온대지방에서는 산불의 위력을 키우고 산불이 다시 온난화를 가속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극지방의 산불은 숲이 없는 벌판에서도 활활 타오르는데 땅의 토탄을 태우면서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산불의 불똥이 미국 대선에도 튀었다. 기후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산불을 민주당 주지사들의 산림관리 책임으로 몰아가자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럼프를 ‘기후 방화범(climate arsonist)’이라고 몰아세웠다. 2007년 유엔 기후회의에 참가한 과학자들은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최고치를 찍게 한 뒤 2050년까지 반 이하로 감축하는 긴급계획을 짰다. 미국 중국 등 강대국 지도자들의 비협조로 올해 최고치를 찍는 목표는 오래전 물 건너갔다. 방치하다 인류가 통제할 수 있는 선을 넘지 않을까 걱정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인터스텔라#기후 방화#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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