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도 아끼는 청춘들 ‘욜로’ 포기의 심리학[광화문에서/김유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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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산업2부 차장
김유영 산업2부 차장
사회초년생 박모 씨(26)는 입사 2년 차인데 신용카드가 없다. 연말 소득공제 혜택을 받는 것보다는 아예 카드를 긁지 않고 돈을 아끼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친구들과 만나 지출이 생기면 며칠은 돈을 안 쓴다. 한 달 용돈 30만 원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한다. 스트레스도 재테크로 푼다. 화나는 일이 있으면 통장에 돈을 이체한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며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를 외치던 젊은이들이 달라지고 있다. 이 순간을 즐기기 위해 돈을 쓰던 이들이 이제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금이든 종잣돈 불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증권사 리서치센터나 애널리스트가 운영하는 텔레그램 메신저의 채널에서 주식 시황과 뉴스 해설을 받아 본다. 많게는 1000명 가까이 되는 부동산 투자 단톡방에 들어가 각종 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정부 규제를 논한다. 그래도 궁금한 건 유튜브를 통해 배운다. 유튜브엔 이들에게 익숙한 수능 인강(인터넷 강의) 스타일로 일일이 정보를 알려주는 영상들이 쌓여 있다. 주말엔 ‘임장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나 모하(모델하우스)를 누비며 당장은 사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하지만 종잣돈이 불어날 언젠가를 기약해 본다.

심지어 10, 20대가 주(主) 사용층인 틱톡에서도 주식 크리에이터가 등장해 인기를 끈다. 1분짜리 짧은 영상을 올리는 앱 특성상 춤추는 모습 등이 주를 이루지만 이들은 직접 투자한 주식 종목과 수익률 등 주식 현황판 영상을 공개한다. 실시간 게임을 보여주는 플랫폼인 트위치나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에서도 장(場)이 열리면 자신의 주식 투자 현황판을 그대로 보여줘 수백 명이 동시에 지켜보기도 한다. 이들은 마치 게임을 관전하듯 현황판을 보며 수익률이 오를 때에는 환호를, 급락할 때에는 탄식을 대화창을 통해 보낸다.

이들은 왜 재테크에 매달릴까. 그동안 모아둔 돈도 없는데 언제까지 회사를 다닐지도 몰라 앞날이 막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단 돈을 모아 주식으로 불린 뒤 집을 사고, 은퇴해도 ‘경제적인 자유’를 누리고 싶다는 것. 실제로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최근 만 25∼39세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복수응답)한 ‘밀레니얼 세대 신투자인류의 출현’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재무적 목표로 ‘주택 매입을 위한 재원 마련’(61%), ‘은퇴자산 축적’(51%)을 꼽았다.

한때 호주의 부동산 재벌이 “힙스터들이여, 브런치 사먹을 돈을 모아 집을 사라”고 말해 현지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비난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들에게는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질(質)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 안정성도 떨어지면서 집값은 크게 올랐다. 다가올 미래에 각종 복지예산 증가로 이들이 짊어져야 할 세금 부담은 커지고 국민연금 고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아끼고 조금이라도 수익률을 높여 그 나름의 미래를 구축해놓는 게 이들에게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최근 젊은층의 지지율 하락을 겪고 있는 대통령이 이달 5일 “젊은이들과 꿈을 함께 하겠다”고 발언한 게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현상이다.

김유영 산업2부 차장 abc@donga.com
#티끌#청춘#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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