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보호법, 이제야 일 좀 하는 국회[오늘과 내일/신연수]

신연수 논설위원 입력 2020-08-06 03:00수정 2020-08-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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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들 대부분이 도입한 세입자 보호
31년간 외면한 정부-국회가 직무유기다
신연수 논설위원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세입자들은 2년마다 치솟는 임대료에 울거나 쫓겨나지 않고, 최소한 4년은 안정적으로 한집에 머물 수 있게 됐다. 1981년 처음 법이 제정되고 1989년 임차 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난 후 무려 31년 만이다. 그동안 국회는 세입자 보호와 서민 주거안정에 손놓고 있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유엔 인권이사회가 “한국의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사실상 임대인의 권리만 보장하는 제도”라고 평가했을까. 지난해 유엔은 세입자의 장기 거주를 보장하는 계약갱신요구제와 임차료상한제를 한국 정부에 권고하는 보고서를 공식 채택했다.

그동안 전혀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1년부터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보수 정부나 보수 정당이 반대해 무산됐다. 이번에 여당이 야당과 협의 없이 밀어붙인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언제 통과될지 알 수 없었다.

자유방임주의 옹호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말이 있다. “임대료 규제는 전쟁 다음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확실한 방법이다.” 스웨덴의 우파 경제학자 아사르 린드베크가 한 말이다. 폐해가 그렇게 심각하다면 스웨덴은 벌써 규제를 폐지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스웨덴은 1940년대부터 임대료 통제법을 만들었고, 지금도 사회적 기구를 통해 임대료를 통제한다. 세입자는 한번 입주하면 중대한 문제가 없는 한 계속 거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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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뿐 아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한국보다 훨씬 강력한 세입자 보호를 실시하고 있다. 독일 덴마크 등 유럽 대부분과 일본에서는 무기한 계약이 기본이고 임대료 인상도 제한한다. 미국의 5개 주도 세입자 보호 제도가 있다. 주택을 인간의 기본 권리로 여기고, 모든 국민에게 ‘주거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규제에는 부작용이 따른다. 임대료 규제는 서서히 주택 공급을 줄이고 주택의 품질을 낮춘다는 견해가 많다. 그래서 처음엔 임대료를 아예 동결했던 선진국들도 일정 수준의 임대료 인상을 보장하는 등 시장 상황에 따라 제도를 수정해왔다.

설사 20∼30년 뒤 민간 임대주택 공급이 10∼20% 줄어든다고 해도, 당장 2년마다 임대료가 급등하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고통을 방치하는 게 옳은가. 세입자 보호는 하되, 정부가 앞장서 주택 공급을 늘리고 집수리를 지원하는 등 부작용을 보완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부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의원은 “이 법으로 전세의 월세 전환이 빨라진다”고 주장했다. 얼마나 비판할 게 없으면 엉뚱한 트집인가 싶은데 ‘레전드 연설’이라니 의아하다. 이 법이 시행된다고 집주인이 쉽게 거액의 전세금을 내주고 월세로 전환하기는 어렵다. 전세는 이 법과 관계없이 저금리 등으로 인해 2010년 50.3%에서 현재 39.7%로 꾸준히 줄었다. 2012, 2013년 월세가 처음 전세를 추월했을 때도 ‘전세소멸론’이 유행했다. 전세는 이 법과 상관없이 집값 차익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저금리가 계속되면 줄어들 것이다.

통합당은 말로는 “서민을 위한다”면서 의원들의 40%가 다주택자다.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해 대구 경북이 지역구인 많은 의원들이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갖고 있다. 여당의 법안에 대해서는 “반(反)시장적 공산주의”라며 이념적 공세만 하고 서민들의 현실적 고통을 외면한다. 이래서야 아무리 당명과 정강을 바꾼들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임대차보호법의 전격 개정은 4·15총선에서 국민이 표를 몰아준 ‘슈퍼 여당’의 힘을 민생을 위해 사용한 사례가 될 것이다. 그래도 여당의 독주는 바람직하지 않다. 신규 세입자 보호 등 미진한 점은 여야가 협의해 보완하기 바란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주택임대차보호법#국회#세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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