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배구의 명과 암[현장에서/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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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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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다. 프로배구 선수들이 악플에 멍들고 있다. 동아일보DB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다. 프로배구 선수들이 악플에 멍들고 있다. 동아일보DB
강홍구 스포츠부 기자
강홍구 스포츠부 기자
2019∼2020시즌 프로배구 여자부는 사상 처음으로 평균 시청률 1% 고지(1.05%)를 넘었다. 인기 덕분에 올 시즌 평균 연봉은 처음으로 1억 원(1억1200만 원)을 돌파했다. ‘배구 여제’ 김연경이 V리그에 복귀하는 등 흥행 호재도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기에 여자 프로배구가 최고 황금기를 맞게 됐다는 전망이 쏟아졌다.

이런 가운데 1일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시즌까지 현대건설에서 뛰었던 고유민(25)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 경찰은 고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2013∼2014시즌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은 고유민은 7시즌 동안 팀에서 백업 레프트로 뛰었다. 올 3월 개인적인 사정으로 팀을 떠났고 구단은 5월 그를 임의탈퇴 처리했다.

고인이 떠난 뒤 그가 평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악성 댓글(악플)에 시달려 온 사실이 알려졌다. 특히 시즌 막판 부상당한 주전 리베로를 대신해 임시 리베로로 투입돼 부진했던 것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고유민은 5월 인스타그램을 통해 “제 팬도 아니신 분이 어쭙잖은 충고 같은 글 보내지 말아 달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만연해 있던 악플 문제를 수면 위로 끄집어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지금도 많은 선수들이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 선수들은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SNS를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SNS 등을 통해 인신공격성 발언은 물론이고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악성 메시지들이 쏟아진다. 경기장이나 집으로 찾아오겠다는 협박성 메시지를 받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에 SNS 계정을 폐쇄하거나 댓글 기능을 제한하는 선수도 있다. 선수 출신의 구단 관계자는 “악플에 시달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위축되고 모든 사람이 나를 욕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선수들은 악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두려워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크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한 지도자는 “선수들에게 최대한 악플을 접하지 말라고 권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연예뉴스처럼 인터넷 포털 사이트 댓글 기능을 없애거나 댓글 실명제를 실시하자는 등의 대안도 나오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평가다. 한국배구연맹(KOVO)과 구단 차원의 악플 대처 교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무엇이 됐든 손을 놓고만 있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

김연경은 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내가 무의미하게 보낸 오늘이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토록 기다리던 내일”이라는 추모의 글을 올렸다. 꽃다운 선수의 안타까운 선택으로 드러난 여자 프로배구의 어두운 그림자. 이를 걷어내지 못하면 밝은 내일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깨달아야 할 때다.
 
강홍구 스포츠부 기자 windup@donga.com
#여자프로배구#고유민#현대건설#김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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