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포’와 실업급여 사이에서[현장에서/곽도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지난해 11월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2019 하반기 글로벌 일자리 대전’. 한국산업인력공단 제공
지난해 11월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월드에서 열린 ‘2019 하반기 글로벌 일자리 대전’. 한국산업인력공단 제공
곽도영 산업1부 기자
곽도영 산업1부 기자
“‘취뽀’(취업뽀개기·취업 성공을 말하는 은어)는 끝났다. 이젠 ‘취포’(취업포기)의 시대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나오는 자조 섞인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쓰나미가 제조업, 유통서비스업까지 휩쓸면서 기업들은 생존의 기로에 놓였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의 시대는 가뜩이나 좁았던 취업문의 빗장을 아예 걸어버렸다. 기업들은 대규모 공채 대신 수시로 인재를 뽑겠다며 채용의 문법까지 바꿨다. 이미 현대자동차, SK, LG, KT가 대졸 정기 공채를 폐지했거나 할 예정이고 이런 추세는 점차 확산되고 있다. 한 자릿수를 뽑는 대기업 인턴 채용에 수천 명이 몰릴 정도다.

한국 청년의 수난시대는 바다 건너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6일(현지 시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가을 학기부터 온라인 강좌만 수강하는 외국인 유학생들은 미국에 체류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코로나19로 대부분 대학이 전면 온라인 체제로 운영되는 상황을 고려하면 사실상 유학생들은 짐을 싸라는 얘기다. 지난달 22일 올해 외국인 취업비자 발급을 전면 중단하는 행정명령에 이은 두 번째 조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인 유학생들은 국내 채용시장으로 ‘U턴’하고 있다. 바늘구멍만큼 좁아진 대기업 취업문을 놓고 이제는 국내파와 해외파 사이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일부 한국 청년은 취업의 꿈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한다. 월 최소 181만 원인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180일 아르바이트 기간을 채운 뒤 해고를 ‘자청’하는 청년들이 생기고 있다. 각종 블로그와 커뮤니티에는 “180일을 채우지 못하고 잘리면 합산해 180일을 넘기도록 퇴사할 때마다 이직확인서를 신청하라”는 등의 실업급여 수령 ‘꿀팁’이 공유된다. 지난달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신규 실업급여 신청자 가운데 20대 비중은 2017년 23.5%, 2018년 23.7%, 지난해 24.1%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이런 고달픈 시대에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청년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무작정 노력하기보다는 한국의 새로운 채용 문법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일반 사무직 공채 ○○○명’이 아닌 ‘의약품 유통채널 관리실무 ○명’ ‘신규 퍼즐게임 기획 ○명’ 같은 채용 공고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잡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올 하반기 취업에 자신이 있다”고 응답한 신규 채용 구직자들은 “기업, 직무 등 지원하고자 하는 취업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에 자신이 있다”(65.0%)를 가장 큰 근거로 꼽았다. 이제 외국어, 어학연수, 동아리 등 막연한 스펙을 쌓기보다는 자신이 정말로 관심 있는 기업, 그 시장의 동향과 채용 여력, 해당 직무를 ‘찍어서’ 공략해야 할 때다.

곽도영 산업1부 기자 now@donga.com
#취업뽀개기#취업준비생#코로나19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