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김종인이라는 포퓰리스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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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 주제는 분배와 재분배, 경제수석 때도 성장에는 무관심
평생 나랏돈 쓰는 것만 궁리… 퍼주기 경쟁 무책임할수록 유리
김종인식 처방 이미 효과 떨어져

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한국외국어대 독일어학과를 나와 서독 뮌스터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재정학 분야의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지도교수는 소련 경제 전문가였고 그의 권고로 중국 경제에 대해 써보려고 준비하다가 뜻하지 않게 바꾼 주제가 ‘개발도상국가에 있어서의 분배와 재분배’다. 철학이나 신학이면 몰라도 1960년대에 경제학을 공부한다면 미국으로 가는 게 자연스러웠을 것 같다.

그는 유학에서 돌아와 서강대에서 가르쳤다. 교수 시절인 1980년에 그가 낸 유일한 학술적 저서인 ‘재정학’을 읽어보면 유학까지 가서 공부해 쓸 내용인가 싶을 정도로 평이하다. 가인(街人) 김병로의 손자로 태어났으나 뛰어난 학재(學才)는 보이지 않으니 당시 집안에서 기획 유학을 보내 교수로 만든 케이스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는 최근 낸 회고록에서 처삼촌이 되는 박정희 시절 비서실장 김정렴 씨를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지만 국내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지도 않아 선배도 없고 경제학도 생소한 곳에서 배운 그를 청와대의 처삼촌이 아니면 누가 찾아줬을까. 그는 유신 시절 정부 프로젝트에 여러 차례 초청받아 참여하고, 전두환 집권 과정에서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재무분과위원으로 활동한 끝에 두 차례나 민정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이 돼 1987년 민주화를 맞는다.

그는 유학을 떠나기 전 24세의 나이에 정치인 가인의 비서를 맡으면서 정치에 일찍 눈을 뜰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전두환 시절 민정당 전국구 의원 2차례, 노태우 시절 경제수석을 거쳐 다시 민자당 전국구 의원을 지내면서 경제 분야의 정치기획가로서 경험을 쌓게 됐다. 공부보다는 정치가 적성에 맞은 듯하다.

군사정권 시절의 여당 정치인인 데다 1994년 민자당 전국구 의원 당시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사라지는가 했던 그가 존재감을 지니고 다시 불려나온 것은 정계가 2011년 무상급식을 시발로 퍼주기 경쟁에 돌입한 이후다. 그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박근혜 쪽으로, 2016년 총선에서는 문재인 쪽으로 불려 다녔다.

1987년 헌법에 그가 넣었다는 경제민주화의 개념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다. 서양에서 경제민주주의라고 하면 노동자자주관리나 노사공동결정을 의미한다. 그런 건 아니란다. 알쏭달쏭한 경제민주화 덕분에 그가 이쪽저쪽 불려 다녔지만 실제 한 일은 박근혜 쪽에서는 노인들에게 월 20만 원을 지급하는 공약을 만들고, 나중에 문재인 쪽으로 가서는 한술 더 떠 노인들에게 월 30만 원을 지급하는 공약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아직도 개발이 중요한 노태우 시대에 경제수석을 지낸 사람인데도 성장에는 관심이 없었다. 재정학자가 대체로 성장에는 문외한이다. 그래도 제대로 된 재정학자라면 최소한 세입과 세출의 균형에는 관심을 가진다. 그는 세입에도 별 관심이 없었고 돈을 쓰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그가 다시 보수 정당 쪽으로 불려왔다. 그의 전략은 늘 그렇듯이 상대편보다 더 많이 지르는 것이다. 4·15총선을 앞두고 긴급재난지원금의 지급 범위를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조차 70%로 정한 것을 100%로 바꿔버린 것이 그다. 그러나 통합당은 표를 얻지 못하고 그 제안을 잽싸게 낚아챈 민주당이 공을 독차지했다. 김종인식 처방에 내성이 생겨 그 약효가 다해 가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

퍼주기 경쟁은 더 무책임한 쪽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보수정당은 이 게임에서 질 수밖에 없다. 그는 앞으로 청년 기본소득을 도입할 뜻을 밝혔다. 보수정당이 얼마를 주든 민주당은 그 이상을 줄 준비가 돼 있다. 기본소득 등 온갖 공상적 아이디어가 민주당 쪽에 판친다. 보수정당이 그중 하나를 받으면 민주당은 죄의식마저 털고 더 얹어서 갈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20년 집권 혹은 100년 집권의 묘책이라고 할 것도 없는 묘책이다.

보수정당은 ‘누가 더 많이 퍼주나’의 게임을 ‘누가 더 많은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나’의 게임으로 바꿀 때만 승리의 기회가 온다. 그러나 평생 나랏돈 버는 궁리는 없이 나랏돈 쓰는 궁리만 해온 80대 노인은 자기편이 이길 수 있는 게임에는 관심이 없고 상대편이 이길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하겠다고 덤비고 있다. 보수정당마저 상대편보다 더 많이 퍼줘 선거에서 이기려다 망한 나라들이 더 이상 남 일 같지 않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김종인#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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