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거짓말 사이에서[김세웅의 공기 반, 먼지 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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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캘리포니아에 내려진 자택 대기명령으로 외부 활동이 극도로 줄어든 지난 두 달 동안 평소 쌓아두고 안 읽던 책들을 자주 접했다. 덕분에 폭스바겐사의 질소산화물 배출량 속임수 장치(defeat device)의 설치 배경과 이 사안이 세계적인 스캔들로 확산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이면에 자리 잡은 기업의 이윤추구와 사회적 규제의 끊임없는 갈등관계를 잘 보여주는 일이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영국의 가디언 등에 대기 환경 관련 탐사보도를 주로 해온 베스 가드너가 2019년 출판한 ‘숨 막힘(choked)’은 ‘디젤 게이트’로 불리는 폭스바겐과 미국 연방환경청(EPA) 캘리포니아대기자원위원회(CARB)가 벌인 16개월간의 줄다리기를 자세히 다뤘다. 2000년대 중반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기름값이 오른 미국에서는 연료소비효율이 소비자들의 차량 구입에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미국 시장 확장을 꾀하던 폭스바겐은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가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시장을 공략하자 ‘클린디젤’이란 이름을 걸고 유럽시장에서 팔아오던 차량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 이 판매 전략은 많은 자동차 전문가를 놀라게 했다. 디젤엔진은 높은 연비의 장점이 있지만 질소산화물의 배출을 감소시키는 삼원 촉매변환 장치는 디젤차에 거의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의 질소산화물 배출기준을 디젤 승용차가 만족시킬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폭스바겐은 큰 회사이니 무언가 해결책을 만들었겠지’ 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폭스바겐은 미국에서 2% 정도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다. 하지만 미국의 시장규모를 생각했을 때는 성공적인 안착이라고 평가됐다. 이런 폭스바겐 디젤차의 질소산화물 배출에 관한 진실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밝혀진다.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있는 비영리기구인 청정운송국제협의회(ICCT)에서는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미국의 디젤차가 유럽의 같은 차종보다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더 적은 이유를 알아보려고 했다. 이에 실제 도로주행 시 나오는 질소산화물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그 결과 실제 신고한 배출량보다 도로주행에서 많게는 40배나 높은 질소산화물이 배출되는 것을 확인했다.

소규모의 비영리기구가 글로벌 대기업을 상대하기 어렵다고 본 ICCT는 이 자료를 EPA와 CARB로 송부한다. 1970년 통과된 미국의 대기청정법은 당시 극심했던 미국의 스모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환경규제에 강력한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러한 조항을 근거로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디젤뿐만 아니라 폭스바겐의 차량 자체를 미국에 팔지 못하게 하겠다고 경고한 후 16개월에 걸친 줄다리기 끝에 폭스바겐은 배출량 속임수 장치를 자백했다.

그렇다면 정작 디젤 승용차의 고향격인 유럽에서는 왜 이러한 속임수를 잡아내지 못했을까? 이에 대해 가드너는 유럽 배출가스 규제의 두 가지 허점을 이유로 들었다. 하나는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은 유럽연합 내 특정국가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고 환경인증에 대한 편의를 제공받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더 결정적인 허점은 엔진에 무리를 줄 수 있다면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일시적으로 정지하는 것이 유럽 법규상 가능했다는 점이다. 이런 허점을 틈타 자동차 회사들은 자동차를 정상적으로 운행하는 중에도 배기가스 저감장치가 작동이 안 되는 차들을 유럽과 세계시장에 공급해왔던 것이다.

‘디젤 게이트’ 이후 독일의 경유차를 조사해 보니 53가지의 모델 중 단 3가지 차종만 자신들이 고시한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지키고 있었다. 오히려 폭스바겐 차종들은 다른 차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위반율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도 디젤차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디젤 게이트’는 규제라는 사회 제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기업 규제에 대한 찬반이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갈리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정부는 배출권거래제 등 유연한 제도로 기업이 혁신을 추구하도록 유도해야 하지만 거짓말을 일삼는 기업에는 강력하게 행정조치를 하는 등 운영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skim.aq.20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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