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첨단기술 ‘싹 자르기’[횡설수설/김영식]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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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 관련 정보기술(IT) 업체인 치후(奇虎) 360, 얼굴인식 관련 스타트업 클라우드워크테크, 인공지능(AI) 관련 기업 클라우드마인즈테크…. 미국 정부가 대중(對中) 3차 제재 대상에 올린 33개 기업 및 정부기관 명단이다. 첨단 기술 관련 기업들이 대거 포함됐다. 미 정부는 안보와 인권 문제를 내세웠다. 하지만 AI·로봇 등 IT 관련 기업이 24개에 이른 것을 두고 미국이 중국 첨단 기술의 싹을 자르는 작업에 본격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현재의 무역질서 체제를 만든 건 미국이지만 그 과실을 중국이 챙겼다는 게 미국의 불만이다. 미국은 자국에 없는 기술인 화웨이의 5세대(5G) 통신망 구축이 미래의 기술 표준이 되지 않도록 확실히 눌러둘 심산이다. 중국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려고 추진하는 ‘중국제조 2025’가 타깃이다. 미중 분쟁의 실상이 차세대 기술 패권 경쟁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미국의 초강경 대중 압박은 주요 2개국(G2)의 대결별(Great Decoupling)을 예고한다. 미국은 중국과의 1단계 무역협정 파기는 물론이고 중국의 고립을 겨냥한 경제 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를 구상하고 있다. 관건은 글로벌 시대에 중국 없이 미국이 버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첨단 분야에선 중국의 대미 의존도가 높아 미국이 버틸 여력이 있다면서도 막대한 비용 증가와 수익 감소를 우려한다. 미 반도체 공급업체인 퀄컴과 브로드컴 수익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나온다. 미국의 과도한 중국 때리기가 자해행위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지난해 기업가치 10억 달러(약 1조2300억 원) 이상의 스타트업을 일컫는 ‘유니콘’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세계 유니콘 494개 가운데 중국이 206개로 처음으로 미국(203개)을 제쳤다. 덩샤오핑은 낮은 자세로 적극적인 역할을 자제한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를 강조했지만 경제, 외교, 군사 분야에서 근육을 키운 시진핑 국가주석은 ‘홍콩 국가보안법’ 처리를 비롯해 미국과의 전면전마저 마다하지 않는다.

▷미중 양국이 싸우지 않고 지내면 좋겠지만 국제정치의 세계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코로나19 대응 실패 비난에 직면한 도널드 트럼프는 중국과 갈등할수록 대선에서 유리해진다. 경제 역풍을 걱정하는 시진핑은 물러설 생각이 없다. 그 와중에 화웨이 갈등, 홍콩 국가보안법 등을 두고 많은 나라와 기업이 줄서기를 요구받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질서와 공정한 무역이라는 우리 외교의 지향점과 좌표를 분명히 하는 선제적 외교만이 이런 선택의 수렁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김영식 논설위원 spear@dogna.com
#it#ai#클라우드#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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