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호 물징계, 야구팬 뿔났다[현장에서/황규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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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호가 2016년 음주 사고로 조사를 받은 뒤 서울 강남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강정호가 2016년 음주 사고로 조사를 받은 뒤 서울 강남경찰서를 나오고 있다.
황규인 스포츠부 기자
황규인 스포츠부 기자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5일 국내 복귀를 신청한 강정호(33·전 피츠버그)에 대한 상벌위원회를 열었다. 오후 2시에 시작한 회의 결과는 오후 6시 반이 다 되어서야 나왔다. KBO 관계자는 이날 발표가 늦은 데 대해 “실제 회의 시간은 2시간 정도였는데 정운찬 커미셔너(총재)의 감수가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음주운전 선수에 대한 상벌위는 1시간 안에 끝나는 게 일반적이다. KBO는 2월 11일 삼성 최충연(23)의 음주운전에 대해 상벌위를 열었는데 42분 만에 50경기 출장 정지 등의 내용이 담긴 보도자료 발송까지 마쳤다. 이날 상벌위 역시 세 차례 음주운전이 적발된 강정호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결과는 ‘1년간 유기 실격 및 봉사활동 300시간’이었다. 원소속 구단 키움과 계약하면 내년 시즌 KBO리그 복귀가 가능하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곳곳에서 프로야구 팬들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한 팬은 “초딩(초등학생)도 아니고 반성문이 먹히다니…”라고 한탄했다. 미국 텍사스주에 체류 중인 강정호는 이날 법률 대리를 맡고 있는 김선웅 변호사(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를 통해 상벌위에 자필 반성문을 제출했다.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던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이제야 바보처럼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릴 자격이 없는걸 알지만, 야구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야구가 하고 싶은데 강정호는 왜 상벌위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에이전시 측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강정호가 귀국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야구가 다시 하고 싶은데 귀국 후 2주, 다시 미국 출국 후 2주 자가 격리가 그렇게 큰일이었을까.

KBO로서는 징계 수위를 더 높이기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현재 KBO 규약에는 음주운전으로 3회 이상 적발된 선수에게는 3년 이상 유기 실격 처분을 내리도록 돼 있다. 하지만 강정호가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낸 2016년 당시 규약에는 음주운전을 저지른 선수에 대해 “실격 처분, 직무 정지, 참가활동 정지, 출장 정지, 제재금 부과 또는 경고 처분 등”을 내린다고 모호하게 나와 있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현재 기준을 소급 적용해 무거운 징계를 내리면 강정호 측에서 소송을 걸어 승소할 확률이 높다.

그래도 궁금하다. 강정호는 음주운전만 세 차례 한 게 아니라 두 번(2009, 2011년)은 음주운전 사실을 숨기기도 했다. 거짓말까지 한 것이다. 이런 선수에게 1년 징계밖에 내리지 못하는 리그가 과연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울 수 있는 걸까.
 
황규인 스포츠부 기자 kini@donga.com
#한국야구위원회#kbo#강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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