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공유
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정치

[@뉴스룸/주성하]“나는 안다, 북송 탈북자의 절망을…”

입력 2012-02-27 03:00업데이트 2012-02-27 09:49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주성하 국제부 기자 탈북기자·김일성대 졸업
족쇄를 차고 북한으로 끌려가는 탈북자의 절망을 나는 안다.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북송 길에 오르는 혈육을 지켜보며 가슴이 말라드는 가족의 고통을 나는 안다.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끌려간 가족과 영영 생이별한 아픔도 안다. 그건 바로 지금의 나이기 때문이다. 그 심정을 어찌 글로 옮길 수 있을까.

이달 14일 나는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게 한국으로 오다 체포된 탈북자 31명을 석방해 달라는 편지를 썼다. 매일같이 관련 기사를 발굴해 끊임없이 탈북자 구명운동의 불길이 번져 나가도록 노력했다. 지금은 이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커졌다. 그 덕분에 주위에선 쉽지 않은 일을 했다고 박수도 쳐주지만 고백하건대 정작 나는 너무 아프다.

▶본보 14일자 1면 탈북 주성하 기자 ‘호소의 편지’

이번 일은 사실 나의 신념을 거스른 행동이다. 지난 시절 나는 중국 내 탈북자 문제는 이슈화할수록 손해라고 여겼다. 대표적 사례로 과거 탈북자들이 중국 내 외국공관에 집단 진입을 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지던 때가 있었다. 성공한 수십 명은 살았지만 그 대신 중국의 탈북자 검거 선풍을 불러일으켜 수천 명의 탈북자가 체포돼 북송됐다. 한국으로 향하는 탈북자의 흐름은 얼음 밑 강물처럼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고’를 친 이유는 무엇일까. 8일 선양(瀋陽)에서 한국행 탈북자 12명이 체포된 지 불과 몇 시간 뒤 나는 그들의 명단을 전달받았다. 10년 넘게 탈북자 문제를 다뤄온 경험은 이들이 결국 북송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물밑 석방 교섭이 끝내 결렬됐다고 현지 활동가들이 알려오기까지 엿새간 나는 끊임없이 자문자답했다. 묻어버릴까 터뜨려버릴까….

터뜨린다는 것의 의미를 나는 잘 안다. 중국의 탈북자 검거 선풍을 불러와 잡히지 않을 수 있었던 탈북자들이 체포돼 북송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도 더욱 강경해질 것이다. 수십 명이 될지, 어쩌면 수백 명이 될지도 모를 목숨들이 내 선택에 달린 것이다.

[채널A 영상]“북송될 바에야 죽음을…” 탈북자 가족의 절규

하지만 끝내 나는 터뜨리는 길을 택했다. 김정은 체제 이후 더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탈북자 처벌과 삼엄한 국경 경비, 더는 좋을 수 없는 북-중 밀월 등으로 탈북의 흐름은 이미 꽁꽁 얼어붙었다고 판단했다. 현재의 탈북 환경과 탈북자 처벌이 사상 최악이라는 데는 아무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이번 일을 묻어버려 얻을 실리보다 국제사회가 주목해 얻을 실리가 더 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정적 이유는 따로 있다. 죽게 된 혈육을 제발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가족들의 애끊는 절규를 직접 맞닥뜨린 것이다. 그 앞에서 누가 어떤 계산을 할 수 있으랴. 내가 겪었던 아픔을 저들이 이어가리란 사실이 나를 흔들어 놓았다.

가족이 북송된 뒤로 나는 겨울에도 난방을 하지 않고 살았다. 얼어붙은 감방 속에서 추위와 공포에 떨 혈육을 생각하면 밤에 이불을 덮는 것조차 죄스럽다. 새우잠으로 밤을 보내고 아침이면 출근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웃음을 지어야 하는 그 아픈 삶을 저들 또한 살아야 하다니. 결국 혹시 구명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여론에 걸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여론이 커질수록 강화될 단속 때문에 피해를 볼 이름 모를 탈북자들에겐 나는 죄인이다.

이번 선택이 잘한 것인지 지금은 알 수 없다. 그 평가는 당장 내릴 수도, 남이 내려줄 수도 없다. 먼 훗날 오직 양심만이 심판할 것이다. 부디 희생보다 더 많이 구할 수 있기를….

주성하 국제부 기자 탈북기자·김일성대 졸업 zsh75@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