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훈]신뢰의 벽돌을 쌓자

  • 입력 2008년 10월 29일 03시 02분


지구촌 전체로 확산된 글로벌 경제위기가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짓누른다. 해고의 칼바람이 휘몰아칠 것이라는 소문에 샐러리맨들의 어깨는 축 늘어진다. 술을 마시는 자리에선 거의 빠짐없이 경제가 안주처럼 오른다.

신문사도 다르지 않다. 신문의 얼굴인 1면 머리기사 등을 정하는 편집회의에선 주가와 환율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기사 배치나 크기를 정하는 차원을 넘는다. 주가와 환율의 등락 폭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큰 폭으로 주가가 오르고 환율은 내리면 분위기가 좋아진다. 주로 그 반대이지만 그런 날은 “걱정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드러내 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표정들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면 모두가 한마음인 듯하다.

우리 경제가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터널 속으로 빠져든 것 같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 매를 먼저 맞아 천만다행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펀드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것은 외환위기의 학습효과라고 한다.

다른 의견도 있다. 강펀치를 맞고 정신을 잃어 본 사람은 몸으로 안다. 매운 펀치를 계속 맞느니 링에 누워 버리는 게 낫다는 걸. 그래선지 소비심리,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었다. ‘백약이 무효’라는 말까지 나온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천명한 정권이 들어서고 희망에 부푼 것은 잠시였다. 광우병 시위에 온 나라가 뒤흔들렸고 그게 가라앉을 만하니 이내 경제대란에 휩싸여 버렸다. 정부도 믿지 못하고 기업도 불신당한다.

최근 중국에서 열린 언론인 모임에서 한 싱가포르 언론인은 한국을 ‘비정상 국가’라고 규정했다. 광우병 시위 때 무기력하게 흔들렸던 공권력과 아이를 태우고 거리로 나선 유모차 시위대를 논거로 꼽았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심각한 불신의 늪에 빠져 있다. 압축성장을 통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성과를 바깥에선 경이적인 눈길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내부는 어떤가. 편을 가르고 시각이 극단으로 나뉜다.

한 연구소는 광우병 시위로 국내총생산(GDP)과 설비투자가 1조3500억 원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불신비용을 정확하게 계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신뢰가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10년 전보다 더 지독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겨울에는 없는 사람이 더 추운 법이다. 청계천을 걷다 보면 유영하는 버들치 떼를 자주 보게 된다. 물살이 거센 곳의 버들치들은 꼼짝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잠시 한눈을 팔다 포르르 밀려나는 놈도 있다. 밀려난 버들치가 세찬 물을 거슬러 원래 자리로 돌아오려면 두세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남아야 할 것은 남고 사라질 것은 사라지는 계절을 맞아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곧 닥칠 모진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서로 믿지 못해 생기는 불신비용부터 최소화해야 한다.

민주당이 지급보증안을 처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국난을 앞에 두고 대승적인 자세를 보인 것을 평가해 주고 싶다.

올해는 건국 60주년이다. 서로 소통하고 불신은 제거해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는 원년이 되었으면 한다. 새 집을 짓는 마음으로 신뢰의 벽돌을 쌓아야 한다. 해가 뜨기 전 어둠이 짙은 법이고, 겨울이 오면 머지않아 봄도 온다.

최영훈 사회부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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