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위안부 운동의 성과, 윤미향 개인의 성과로 귀착 유감”[논설위원 파워 인터뷰]

이진영 논설위원 입력 2020-06-10 03:00수정 2020-06-10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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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 공동대표 지냈던 신혜수 유엔인권정책센터 이사장
신혜수 유엔인권정책센터 이사장은 45년간 여러 시민단체와 정부 위원회에서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활동해 왔지만 정치권에는 몸담은 적이 없다. 그는 “시민단체는 권력과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지 너무 밀착돼 있어도, 소통이 단절돼 있어도 안 된다”고 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이진영 논설위원
《여성 인권 운동의 세계적 모범 사례인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 인권 운동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사태로 30년간 쌓아온 명성을 위협받고 있다. 이를 누구보다 아프게 지켜보는 이가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원로들이다. 1990년 11월 정대협을 설립한 윤정옥(95) 이효재(96) 전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제자로 1992년 정대협에 합류해 15년간 운동을 이끌어온 신혜수 유엔인권정책센터 이사장(70)이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활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2004∼2007년 정대협 공동대표를 지냈고, 그 뒤를 이어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55)이 상임대표를 맡았다.》

“2007년까지 정부 지원 거의 없어”
―6일 숨진 서울 마포구 쉼터 소장은 어떤 분이었나.

“할머니들을 모시며 식사 준비해 드리고, 방문자들 뒤치다꺼리하고, 할머니들과 목욕탕도 같이 가고, 할머니들끼리 갈등이 있을 때 중재하고… 몹시 피곤한 일을 16년간 해온 분이다. 이런 사태가 터져 얼마나 상실감이 들었을지 짐작도 못 하겠다.”

―이용수 할머니(92)가 제기한 정의연의 부실 회계와 후원금 횡령 의혹은 놀랍다.

“정대협 설립 이후 내가 대표로 있을 때까지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의연과 달리 정대협은 37개 회원단체가 끌고 가는 구조였다. 분기별로 회원단체 대표자로 구성되는 대표자회의에서 예산 결산 보고를 하고, 실질적인 활동을 주도하는 실행위원회의 재무 담당이 매달 사무처에서 영수증이랑 통장을 대조했다. 내가 떠난 이후 상황은 모르겠다.”

―정의연 이사회 구조가 더 폐쇄적이라는 뜻인가.


“정대협보다는 상대적으로 집중돼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조직 차원의 회계 부정은 없었을 것이다. 윤 의원도 운동을 해왔던 사람의 윤리상 단체의 돈을 유용했으리라 생각하기 어렵다.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자.”

―정의연이 국세청 공시에 누락한 정부 보조금과 기부금이 37억 원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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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가 정부의 지원을 많이 받는 것은 문제다. 1990년 정대협 출범 후 2007년까지 정부 지원금은 김대중 정부 시절 받은 2000만 원이 전부다. 정대협 운동의 성과로 1993년 위안부 생활안정지원법이 제정돼 피해자들은 지원금을 받았지만 단체는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 정대협 출신인 이미경 씨가 국회의원이 돼 2002년 위안부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법으로 개정하면서 단체 지원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후로도 내가 있을 때까지 정부의 지원은 없었다.”

윤미향 1인 독주 체제는 위험
―정부 지원 없이 힘들지 않았나.

“공동대표들이 무보수로 자기 돈 내가며 운동하던 시절이다. 단체들의 회비와 기업 후원금이 있었는데, 기업들은 일본에 수출을 해야 하니 위안부 운동 후원을 꺼렸다. 한번은 모피회사에서 지원하겠다고 했는데 윤정옥 선생님이 ‘여성 운동 하면서 모피회사 돈을 어떻게 받느냐’고 해 무산된 적도 있다.”

―대표가 무보수라고? 윤 의원은 딸 미국 유학비 출처에 대해 “급여를 받으면 저축하는 오랜 습관”이 있다고 해명했다.


“윤 의원은 첫 상근대표였다. 그 이전 대표들은 모두 정대협 운동을 다른 직업이나 활동과 병행하는 비상근자들이었다. 윤 의원은 정대협 간사로 시작해 상근대표가 됐으니 받던 월급을 계속 받았던 것이다.”

―1세대 운동가들은 다른 경제활동 기반을 가진 상태에서 운동을 한 반면 윤 의원은 운동이 직업인, 생계형 운동가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공교롭게도 윤 대표 시절 횡령 의혹이 터졌다.

“정대협은 3인 공동대표 체제라 전횡이나 횡령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윤 대표 때도 공동대표 체제였지만 그가 처음으로 풀타임 대표가 되면서 사실상 1인 체제로 운영된 면이 있다. 윤 대표가 전력투구하면서 운동을 많이 키운 공이 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힘이 집중되고 그 체제가 오래가는 것은 위험하다.”

“여성단체, 정의연 비판할 수 있어야”
―할머니들과는 예전에도 갈등이 있었나.

“할머니들의 성향이나 지적 능력의 스펙트럼이 넓어 모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누구를 특별 대우한다는 인상을 주어서도 안 된다. 해외 인권 회의에 갈 때는 할머니 한 분이 동행해 증언을 했는데 누굴 모시고 가느냐도 민감한 문제였다. 정의연이 세계에 김복동센터 건립 운동을 하던데 특정인의 이름이 들어가는 사업은 분란의 소지가 있다.”

―이용수 할머니가 정대협 활동이 단체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비판했다.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이 훼손된 것 아닌가.


“정대협은 태평양전쟁유족회와 달리 피해자 단체가 아니다. 할머니들에게 배상 받아주는 것만이 아니라 일본의 공식 사죄와 책임자 처벌 등 7가지 목적을 위해 운동하는 단체다. 유엔에서 원주민, 장애인, 개발로 인한 강제 퇴거자들을 위한 운동을 할 때 적용하는 피해자중심주의는 두 가지 원칙을 뜻한다. 피해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주고 협의할 것, 그들을 참여시킬 것이다. 정의연이 피해자들과 소통하는 것은 중요하다. 문제는 참여의 정도인데, 운동단체로서 의사 결정자가 할머니일 수는 없다.”

―윤 의원이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윤 의원이 국회로 가는 것이 맞느냐, 그 질문부터 해야 한다. ‘위안부 운동=윤미향’으로 여겨지는 상황인데 그 운동의 성과를 모두 자기가 갖고 특정 정당의 ‘간택’을 받아 가는 것, 그것이 위안부 운동과 단체에 어떤 영향을 줄지 생각하지 않고 가는 게 옳은 일이었을까. 30년 운동의 성과가 개인의 성과로 귀착돼 유감이다.”

―한명숙 이미경 남인순 등 여성단체연합 출신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시민운동을 하다 보면 정치에 참여해 법과 제도를 바꿔 내는 일이 필요하다. 문제는 가서 역할을 제대로 하는가,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단체의 고유한 입장과 목적을 유지하는가이다. 단체의 대표였던 사람들이 정치권에 진출해 있더라도 단체는 정치권과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풍자 누드화 같은 성희롱 논란이 발생하면 여성단체는 규탄 성명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위안부 논란도 나눔의 집만 비판할 게 아니라 정의연에도 잘못한 것이 있으면 책임지라고 해야 한다. 그걸 못 하는 것이 문제다. 한명숙 전 총리는 대학 선배로 함께 여성 운동 하던 사이였지만 그가 여성부 장관이던 시절 여성부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나는 가서 데모했다.”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왜 멈춰있나”
―문재인 정부가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인정도 파기도 않으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 작업이 멈춰서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일본의 젊은 세대가 위안부 역사를 전혀 모르고 자란다는 점이 해결 전망을 어둡게 한다. 위안부 이슈를 계속 제기하려면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세계 전시 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국제적인 기여도 해야 한다. 일본의 젊은 세대가 이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어떻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보류된 것도 아쉽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10월 등재 사업의 책임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고 8개국 14개 단체와 영국 박물관의 참여를 끌어내 2744건의 기록물을 등재 신청했다. 등재 마감이 2016년 5월이었는데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가 이뤄지면서 정부의 지원이 끊겼다. 사무실에서 쫓겨나는 등 어려운 여건에서 신청을 했는데 일본의 반대 공작으로 보류됐다. 등재됐다면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기록유산이 됐을 것이다. 정부가 올해는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해결했으면 한다.”

―이용수 할머니가 “수요시위는 증오만 가르친다”고 했다. 수요시위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비판도 있다.

“수요시위에선 반일(反日) 구호도 나오지만 여성 인권에 관한 얘기가 훨씬 많다. 해외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수요시위를 보고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젊은 학생들이 많이 참여한다는 점이다. 수요시위는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배우는 교육 현장이다. 위안부 운동은 민족주의보다 여성주의로 가야 한다. 그래야 식민지 경험이 없는 나라들과도 연대할 수 있다. 수요시위의 운명은 정의연이 이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새롭게 거듭나 운동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을 먹고살기 위한 ‘노동(labor)’, 예술행위인 ‘작업(work)’, 정치 사회적인 ‘행동(action)’으로 구분했다. 윤정옥 이효재 신혜수로 대표되는 정대협 1세대에게 위안부 운동은 약자의 인권을 위한 ‘행동’이었다. 이 낭만의 시대를 이어받은 ‘윤미향 세대’에게 위안부 운동은 ‘행동’이었을까, ‘노동’이었을까. 그들에게 정대협 초기에 펴낸 위안부들의 증언집을 다시 펼쳐볼 것을 권한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식민지 시대 여성의 처참한 삶을 듣고 기록하며 정의로운 해법을 고민하던 젊은 운동가들을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노동으로서 운동이 놓치고 있던 것, 정의연 사태를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신혜수 이사장은::
―숙명여고, 이화여대 영문과
―미국 럿거스대 사회학 박사
―한일장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국여성의전화 대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정대협 공동대표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현 유엔 경제사회문화적권리위원회 (UN CESCR) 위원
―현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 국제연대위원회 사무단장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정의연#위안부#이용수 할머니#윤미향#정대협#위안부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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