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 칼럼]지금 여기가 지옥인가

고미석 논설위원 입력 2018-09-05 03:00수정 2018-09-0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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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영화에도 등장한 ‘헬조선’… 여전히 한국에 잘 먹히는 키워드
9일 총선 앞둔 복지천국 스웨덴, 복지축소 외치는 극우정당 돌풍
세상 어디에도 지상낙원 없는데… 내부의 적 삿대질로 세월 보내나
고미석 논설위원
젖먹이를 데리고 근무하는 유연하고 개방적인 일터다. 세계인이 부러워하지만 막상 결정적 순간에는 상사의 갑질도 다반사다. 거리도 시민도 흠잡을 데 없이 세련되고 매력적이다. 하지만 곳곳에 거지가 진을 치고 있다. 특권층은 예술을 사랑하며 부와 힘을 절제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저소득층과 뒤엉키는 것 자체를 극력 피하고 두려워한다.

인간 사회란 다 거기서 거기일까. 최근 개봉된 외화 ‘더 스퀘어’에 비친, 삶의 질 높기로 소문난 스웨덴의 이면이다. 걸핏하면 우리가 본받을 모델인 양 언급되는 북유럽 선진국의 민낯은 대한민국과 그리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빈부격차, 있는 자 없는 자의 갈등, 공동체에 대한 무너지는 신뢰, 그 모두가.

지난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영화는 신뢰와 배려가 사라진 현대사회의 명암을 유쾌하게 은유하며 인간의 양면성, 나약한 본성에 대한 질문을 세계인에게 던진다. 반면 1000만 관객을 가뿐히 돌파한 한국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은 직설적 감정적으로 현실을 드러낸다. 재개발의 폐허를 향해 “지금 여기가 지옥”이라 외치고, “착하고 정의로우면 서울역에서 신문 덮고 잔다”는 대사도 나온다. 모든 문제의 근원이 사회 탓, 제도 탓으로 수렴된다.

우리 스스로 ‘헬조선’이라 조롱하는 분위기 속에도 이 땅에 사는 국제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보인다. 다문화 부부의 인터뷰에서 인상적 대목이 나온다. ‘마이 코리안 허즈번드’를 펴낸 호주인 아내는 “헬조선이란 말도 그렇고 한국인들은 조국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고 하고, 한국인 남편은 아이 출생 후 “복지가 이렇게 좋은지 새로 알았다”고 덧붙였다. 어린이집 비용에 분유·기저귀 값도 지원해준다고 유튜브로 전하면 외국 구독자들이 깜짝 놀라고 많이 부러워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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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인 남편은 북유럽을 이상화하거나 사실과 다르게 생각하는 착시를 걱정하며 ‘상상 속의 덴마크’를 썼다. 오해와 과장으로 뒤섞인 ‘행복 사회’의 진짜 모습이 담긴 책을 통해 그는 말한다. “14년째 거주하고 있는 한국 역시 덴마크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장점들이 있다. 어느 나라든 장점과 아쉬운 점이 공존한다는 이야기다.”

저속 성장, 급속한 고령화에 청년인구 부족 등 벅찬 과제에 대처하느라 몸살 앓는 나라가 한국만은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9일 총선을 앞둔 스웨덴이 요즘 정체성 위기에 휘청거린다. 후한 복지 시스템을 구축한 대가로, 버는 돈의 60.1%까지 세금으로 내는 국민의 누적된 불만이 팽배한 상태다. 누군가 열심히 일해 세금을 내면 누군가 ‘놀멘놀멘’ 하며 복지 혜택을 누리는 현실이 이들을 화나게 만들었다. 우리야 난민 얘기만 꺼내도 질색하지만 1000만 인구의 스웨덴은 관대한 난민정책으로 복지 지출도 계속 늘었다.

이런 와중에 복지 축소, 반(反)이민 정책을 앞세우는 극우 정당의 지지율이 치솟고 있다. 1917년 이후 승리를 놓쳐본 적 없는 사회민주당에 닥칠 최악의 결과마저 예상된다. 여론조사에서 유권자 절반가량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답할 만큼 비관론이 심각하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학습을 강조했던 복지국가 모델이 스스로 흔들리고 있다 .

그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현 집권당 대표는 어제 교섭단체 연설에서 헌법 개정안에 담았다는, ‘나라다운 나라’를 언급했다. “국민의 자유와 안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나라, 국민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되는 나라, 더 정의롭고 공정한, 그리고 중앙과 지방이 함께 잘사는 나라.” 구구절절 맞는 말인데, 알다시피 정치는 문학이 아니다. 우리 현실은 스웨덴에 비할 바 없이 엄중하다. 통계청 발표를 보면 지난해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생산활동인구 감소도 시작됐다.

지정학 전략가인 피터 자이한은 식량 에너지의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역동적 인구구조를 가진 미국만 빼고 중국 일본 유럽 등 나라마다 지역마다 제 코가 석 자인 시기로 접어들었다고 지적한다. 경험하지 못한 미래가 다가오는 목전에서 다들 처절한 노력을 표 나지 않게 벌이고 있다. 혹시 우리만 한가로이 내부의 적을 향한 삿대질로 세월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가.

1970년대 한대수의 노래 ‘행복의 나라로’가 문득 떠오른다.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이제 모두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아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지금 당신이 살고 싶은 ‘행복의 나라’는 어디인가, 당신이 진정 꿈꾸는 낙원, 그곳은 어디에 있는가.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더 스퀘어#헬조선#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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