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형의 뉴스룸]미국 명문대들의 구조조정

이세형 국제부 기자 입력 2017-05-03 03:00수정 2017-05-2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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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형 국제부 기자
‘미국 명문대들이 인생을 위한 교육보다 생계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대학들이 취업과 전문대학원 진학에 용이한 방향으로 교육과정과 학교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전했다. 하버드대 등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명문대들은 취업용 지식보다 순수 인문·사회과학적 교육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학생들의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과과정 및 학과 구조 개편, 나아가 ‘학풍 리모델링’에 나서고 있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취업에 불리한 인문·사회과학계열 관련 전공 비중을 줄이고, 경영학, 통계학, 공학 같은 실용적인 전공과 융합교육을 늘리는 것이 큰 방향이다. 이른바 ‘미국판 대학 구조조정’인 셈이다.

미국 명문대의 상징인 ‘아이비리그’(미 동부지역 8개 명문 사립대를 의미)도 이런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다. 철학, 경제학, 정치학 같은 순수학문을 육성해온 프린스턴대는 최근 ‘이공계 키우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IT) 관련 전공과 창업 교육에 우선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공대의 소수정예 교육 방침을 없애고 최대한 많은 학생을 받아들이는 것도 검토 중이다.

역시 순수 인문·사회과학 중심의 학부교육을 지향해온 다트머스대도 최근 순수 인문학 전공을 통계학이나 수학과 연계시키는 융합전공을 개발하고 있다. 2014년 남부의 명문인 에모리대가 인류학, 영문학, 역사학을 통계학, 수학과 결합해 개발한 융합전공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에모리대는 이 전공을 개설하면서 인문학 전공자들의 취업률을 높이는 데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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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과 공학 전공으로의 ‘쏠림’ 현상도 커지고 있다. 중부 명문으로 인문·사회과학계열 명성이 높은 노터데임대의 경우 전공을 정한 학부생(6524명)의 절반 이상이 경영대(2047명)와 공대(1321명) 소속이다. 19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소수정예 리버럴아츠 칼리지(교양교육 중심대학)인 하노버대는 전교생의 3분 1이 경영학과 회계학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공대 등 응용학문이 강한 연구중심대학인 코넬대는 창업과 취업 관련 교육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최근 기업 근무 경력이 있는 실무가 교수 채용을 늘리고 있다.

미국 명문대들의 생존을 위한 변화 움직임은 한국 대학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대학들도 연구중심의 교수평가와 전문대학원제 등 미국 명문대들을 벤치마킹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졸업 뒤 취업난으로 대학 교육에 대한 회의가 커지면서 일각에선 ‘조만간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할 수 있다’는 말이 떠돌 정도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 대학들부터 문을 닫게 된다는 뜻이다.

사회의 흐름과 요구에 맞게 전공과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새로운 전공을 개발하는 건 대학이 의당 할 일이다. 최근 미국 대학들의 구조조정 몸부림은 조만간 우리의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대학들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가져온 ‘잘 가르치는 일’에 대해서도 더욱 많은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 대학들은 ‘학문 본연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일보다 연구를 훨씬 더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이세형 국제부 기자 turtle@donga.com


#미국 명문대 구조조정#아이비리그#이공계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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